<겨울왕국 2>에서 만난 진화하는 목소리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사회의 민낯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필연적으로 마주친다. 우리 팀의 리얼 꼰대. 물론 학교 다닐 때도 웹툰 <치즈인더트랩>의 김상철처럼 답 없는 복학생 선배들이 있었다. 그때는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만나는 (피할 수 없는) 수많은 김상철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의 경력과 경험으로 찍어 누르려는 태도, 수직관계를 강요하는 위압적인 표정과 말투 등에 지레 겁을 먹고 한 발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와 같은 변명을 하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굳이 갈등을 만들 필요가 있냐고 치부하며 피할수록 목소리만 큰 김상철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답할 필요 없는 (멍청한) 질문에 침묵으로 응해주고 싶었다. 무례한 말에 지지 않고 싶었다.
사회에서 만난 상급자들의 무심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과연 피하는 게 전부일까, 더 좋은 해결책은 없을까. 좋은 팀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언젠가는 상급자 위치로 올라갈 텐데 어떤 사람을 롤모델로 삼아야 할까.
그러던 와중에 <겨울왕국 2>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엘사와 안나라는 두 인물로부터 ‘리더’의 역량이라는 게 자꾸 눈에 밟혔다. 먼저 첫 번째, 엘사. 모든 일은 자기가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 큰 결정을 내릴 때 독단적. 주변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함. 하지만 능력이 압도적이다. 두 번째, 안나. 능력은 부족하지만 주변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함. 상대방이 불안해하거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걸 잘 캐치하고 먼저 다가감. 적재적소에 아주 적확한 말을 해 준다.
엘사와 안나, 둘 중 어떤 성향의 리더가 좋을까. 능력치 최고의 리더? 능력은 모자란데 서로간에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같이 가는 리더? 사실 내 마음은 안나의 대사 하나에 이미 결정을 내렸다. 영화 중간에 안나가 올라프에게 외치는 씬이었다.
“역시 넌 최고의 파트너야!”
엘사가 얼음으로 멋지게 왕국을 지키고 사나운 말을 멋지게 길들였더라도, 안나의 말 한 마디가 훨씬 감동적이었던 나. 너무 낭만적이고 회사에서는 그렇게 바라지 않는 직원일지는 몰라도 나는 능력은 좀 부족할지라도 팀원의 뒤를 봐주며 같이 가는 리더가 되고 싶다. 먼저 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좋은 걸 어떡해.
최근에 한 회사와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면접관과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끝에 그가 질문했다. 만약 당신을 오일 짜듯이 꽉꽉 쥐어짜고 남은 알맹이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다면, 그 알맹이를 뭐라고 설명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이었다. 나의 장점 즉, 이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의도였겠지. 나는 고민 끝에 답했다.
“팀플레이어요.”
혼자 가려고 용을 쓰거나(이건 좀 안쓰럽다), 앞서 나아가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이끄려는 사람 말고(이런 리더도 분명 필요하다). 같이 미래로 가는 리더가 좋다.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는 복불복이지만, 어떤 리더가 되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 하나만 믿으며 말 안 통하고 몰상식한 회사의 김상철들을 만나러 내일도 씩씩하게 출근해야지. 같이 가고 싶은 동료와 후배들이 무척 떠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