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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르네상스

by 어린 왕자
문화르네상스_브런치.png

“이 숏폼은 화질이 왜 이리 안 좋지?

가만 보자… 이 영상의 원본이

어디 있을 텐데…”


그렇게 나는 유튜브에서

방금 본 강아지 영상의

원본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영상 제목으로 찾아보니

해당 강아지 숏폼 영상이

이미 예닐곱 개가 올라와 있다.


그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누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이게 정말 맞는 건가.

하나의 영상을 도대체 몇 군데에서

올린 거야?’



요즘 온라인에는 이 같은 경우가 흔하다.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대충 짜깁기한 뒤에

자극적인 자막이나 효과를 추가해서

숏폼으로 만들어 올리면

알고리즘에 의해 그 영상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다.


이렇게 해당 채널의 주인은

마치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된 것처럼

명성을 얻기도 하고

경제적 수입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비단 이것은 영상의 영역만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양산형으로 생산되는

자극적인 낚시성 제목의 글이나

AI를 통해 쉽사리 찍어 내는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성 글을

책보다 더 즐겨 읽는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예전과 달리

책의 판매량도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빠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것들은 영화나 책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바로바로 자신이 원하는 데이터만을

간편하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창작과 창작물에 대한

사람들의 낮은 인식도 한몫 거들고 있다.


근래에는 창작에 대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인공지능이 그림과 글을 넘어서

영상까지 만들어 주는 첨단 문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다.


굳이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베끼거나 훔쳐 오지 않아도 된다.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예쁜 그림과

일목요연한 글이 나오고,

머릿속에서만 상상했던 환상적인 순간이

영상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콘텐츠는

뜨거운 감동과 깊은 여운을 주는 명작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을

더 자극적인 도파민이다.


이같이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자극적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생기고부터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그 누구도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당장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작가란 직업을 가진 나조차도

온라인에서 짧은 콘텐츠를 접할 때면

이것을 만든 사람이 정작 이 채널의 주인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도 없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만다.


사람들 역시 영상을 보든 글을 읽든

이게 무슨 대단한 작품도 아니고,

단순한 그냥 눈요깃감인데

퍼 올 수도 또 베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문득 예전에 내가 작은 광고 회사를

다닐 때가 생각난다.


입사하자마자 기가 막힌 광고를 만들고 싶었던

내 열정과 달리 팀장님은 나에게 항상

외국 레퍼런스를 참조해서

비슷하게 만들라고만 요청했다.


이미 성공한 예시가 있는데

뭣 하러 그토록 머리를 싸매면서까지

창작의 고통을 느끼려 하는 것이냐며

쉽게 쉽게 가자고 제안하였다.


예술 작품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만드는 영상인데

무조건 베끼기만 할 수는 없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결국 일과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부터인가 나도

외국 레퍼런스만을 따라 하는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 대세란 것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은 변화하고 있고,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간다.


그것이 저속하든 속 빈 강정이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곧 대중문화가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커다란 틀 안에서

일말의 여과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작금의 대중문화에서는

창작물과 저작권이란 개념이

더 이상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 시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이대로 창작의 시대가

끝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최근 책의 판매량은 부진하지만,

서울 국제도서전의 티켓이

오픈도 하기 전인 얼리버드 예약 단계에서

매진이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강렬하고 짧은 자극에 중독된 우리지만,

또 저작권을 무시한 양산형 창작물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우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의 마음속에

좋은 창작물에 대한 열렬한 수요와 지지가

남아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러한 양질의 창작물을

꾸준히 출판하는 업체와 생산자인 작가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과도기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기회의 갈래와

그리고 선택지가 남아 있다.


문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창작과 창작물의 소중함,

또 이에 따른 저작권의 중요함을

헤아릴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면

요즘처럼 무분별한 콘텐츠 소비가 아닌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대중문화를

이룩할 날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나는 먼 훗날 우리 미래 세대가

오늘날의 이 시대를 문화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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