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탁…”
점심을 먹고 난 뒤 잠깐의 휴식 시간,
직장 후배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화면이었기에
순간 궁금증이 발동했다.
“그게 뭐야?”
“선배, 이거 브런치라고 하는 건데
이곳에서 작가가 되면
본인이 쓴 글을 발행할 수도 있고,
사람들과 소통도 할 수 있고 그래요.”
‘아, 브런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네.”
나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사실 저 플랫폼에 작가 신청을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녀는 항상 나보다 빠르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다.
직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빠르게 모든 업무를 습득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세상에는 정말 천재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녀와 나에게 글쓰기라는
공통된 잣대가 드리워졌고
내가 세 번씩이나 낙방한 저 플랫폼에
그녀는 단박에 합격해서
편하게 글을 쓰고 있다.
슬펐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녀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양
쉬이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 뒤로 나는 브런치에 발길을 끊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때에는
그저 메모장이나 개인적인 블로그에
글을 휘갈겼고 그렇게 브런치를 잊어갔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글은
마치 과거의 시선 이태백 같았다.
그냥 쓱쓱 휘갈겨 써도
수려한 문장이 뿜어져 나왔고,
짧은 시간에 멋진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되었다.
한번 글을 쓰려면
일주일 내내 붙잡고 앉아서
고치고 또 고쳐야 하는 나에게는
분명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 작가라는 직업은
저렇게 타고 난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먼저 퇴사를 했고,
이내 그녀도 프리랜서로 전향한 사실을
주변에서 건너 들었다.
그녀와의 비교는 사라졌어도
나는 꾸역꾸역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좋고,
천재들보다 뒤처진다 해도 상관없다.
그냥 미치듯이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간절히 어떤 종류의 글이 쓰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럴 때마다 글을 써서
한 편 두 편 저장하고,
또 틈날 때마다 글을 고쳤다.
이후 글을 쓰는 일이 편하게 느껴질 때쯤
나는 작은 문예지에서 등단을 하게 되었고,
열등감에서 벗어날 때쯤
브런치에서도 합격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 누구인가 내가 쓴 글에
비록 천재는 아니지만 두보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라는 평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태백과 두보…
동양의 대표적인 두 글쟁이.
지금도 솔직히 말하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태백 같은 그녀이다.
하지만 고치고 고쳐
수백 번 고쳐 발표하는 내 글이
조금도 부끄럽지는 않다.
술 마시며 놀다가도 붓을 잡아서
시를 쓰면 작품이 되는 이태백,
숱한 퇴고를 거쳐서
완벽하고 진지한 작품을 내어놓는 두보.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나는 이태백과 두보처럼
각자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아직도 내 브런치에는
이태백스러운 그녀의 공간이
구독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제 더는 슬프지 않다.
나에게는 이태백의 재능과 낭만은 없을지언정,
집중의 시간과 뜨거운 열정이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