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 감독 때문에 1988년부터 게임 개발자의 꿈을 쫒아온 추종자의 글
결론부터 쓰고 시작하자. 필자의 데스 스트랜딩(이하 DS로 표기) 게임에 대한 리뷰 점수는 5.0점 만점 기준으로, 5.0점 만점을 드린다. 게임 개발자로서의 점수이기도 하면서, 유저로서 딱 내 취향의 게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은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입장이 아닌, 게임 디자이너로서, 게임 코더로서 쓰는 리뷰이므로, 플레이어들 보다는 다른 게임 개발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쓰는 글임을 밝힌다.
다짜고짜 플레이어들이 알 수 없는 세계관과 스토리 발단을 보여주는 게임은 이제는 꽤 많은 편이다.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방식인데, 이런 스토리텔링의 문제점이라면 유저들이 시작부터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부수적인 장치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갖은 이벤트들과 불필요한 등장인물들 등을 통해서, 억지로 유저에게 이해를 강요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컨텐츠 마지막까지도 관객이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흔히 영화에서 맥거핀이라 불리우며( 대표적으로 미션임파서블 3에서 나오는 토끼발 ), 그냥 떡밥만 던져놓고 관객들에게 물음표만 찍어놓고 마무리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걸 뭐 전략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럴수도 있겠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그냥 후킹 당하며 바보 취급 당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설정 방법이다.
코지마가 게임에 이런 맥거핀을 꾸준히 사용해 왔지만 이번 DS에서는, 누가보면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둔 것 처럼 유저의 흥미를 밀고 당긴다. BB나 BT, 귀환자 등 처음부터 대거 등장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에 애초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초반 튜터리얼로 볼 수 있는 게임 진행이 시작된다. 아주 적절하게 절제된 시네마틱 씬들은 주인공 배우의 평소이미지(??? 라기 보다는 워킹 데드에서의 데릴 이미지라고 할까나...)를 유지하듯이, 대화는 줄이고 표정과 카메라웍, 상황 연출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길게 늘어지지 않도록 씬을 끊어내고 게임에 유입시킨다.
이런 연출 방식으로, 게임 중간중간의 연출씬들에서 꾸준히 사용한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으면서, 너무 산만하지 않도록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연출방식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끊어먹지 않도록 레벨 디자인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유저가 연출씬을 기대하는 시점과 귀찮게 생각하는 시점을 영리하게 구분해 두었다.
즉, 고리타분하게 원하지도 않는 NPC들이 등장해서, 게임 세계관에 대해서 쭈욱 읊으며 TMI를 제공하지도 않고, 유저들이 적당히 궁금해 하는 시점에 슬그머니 정보를 던져준다. ( 귀환자의 체액 관련 내용같은건, 흘려듣는 이들도 나중에 생각나게 만들고, 스토리에 집중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되어 준다 )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은 게임 디자이너 입장에서, 추후 개발하는 게임들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는 자신의 세계관을 유저들에게 어떻게 녹여서 보여줄까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방법들이 무작정 시네마틱 씬으로 장황한 배경스토리를 설명하거나, 아주 중요한 NPC들이 강제적인 퀘스트 등에서 마구잡이로 떠드는 방식이 많았고, 최근의 추세라면, 일종의 게임 플레이 방법을 알려주는 튜터리얼 상황과 연계하여 배경 지식을 전달하려 노력해 왔는데, DS 이후에는 이런 형태를 따르려는 디자이너도 많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일단, 오픈월드의 게임을 디자인해본 개발자라면, 레벨디자인의 고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오픈월드 레벨디자인이라고 한다면, '에버퀘스트 2'를 꼽을 수 있는데, 당시 마라톤 게임으로 불리울 정도로, 레벨디자이너가 단순한 배경 모델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디자인의 밀도가 떨어진 게임이었다.
오픈월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블 지역만 디자인하는 레벨 디자인과 달리, 유저들이 배경에 대한 이해나 관심도,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붙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넓은 대지를 달리는 동안 무작정 수많은 이벤트를 깔아놓는다고 되는일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몇십분동안 달리기만 하는 느낌을 줘서도 안되기 때문에, 오픈월드 레벨디자이너는 거의 개발 스케쥴 전체동안 갈려나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DS의 게임 플레이 방식은 이 필드 이동 방식 자체를 게임플레이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그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졌던 '이동하여 퀘스트 받고, 이동하여 퀘스트 완료하기'라는 게임룰을 '이동 자체'에 집중하여, 그 동안 게임에서 가장 지루하게 받아들여졌던 '이동'에 재미를 부여한 것이다.
즉, 젤다 야숨에서 유저들이 필드를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각종 장애물들을 즐거워 하면서도 귀찮아 하는 느낌을 간파하고, 그 자체에 게임의 목적과 재미를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 물론 실제 코지마가 젤다 야숨을 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를 통해서 적당히 느슨한 레벨디자인과 최대한 멋진 화면 연출에 집중하는 것 만으로도 최고의 레벨디자인 효과가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게임 디자이너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개선한 것이고, 이는 이후의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큰 성공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MMOG를 개발할 때, 게임 디자이너와 코더들은 항상 동시플레이에 따른 여러가지 변수를 골치아파한다. 가장 흔한 케이스가, 초보자의 주요 활동 무대에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배치했을 때, 초보자가 수천명이 몰렸을때 난이도 조절에서 실패하거나, 고레벨 유저가 고의로 해당 지역의 몬스터를 싹쓸이 하거나, 신규 서버에 유저가 없는데 몬스터가 넘쳐서 초보자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등은, 게임성이나 게임 디자인 기본틀을 깨어버리기 쉬운 요소가 된다.
이때문에, 일부 콘솔게임들이 MMOG의 일부 요소들만을 차용해서, 싱글플레이 유저를 중심으로 게임성을 유지하는데 집중하는게 보통이다. 즉, MMOG이긴 하지만, 최대한 혼자서 플레이하는데 집중하게 만들고, 그렇게 해야만 콘솔게임의 특성상 유저들이 컨텐츠에 집중하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로 게임을 저평가하게 만들지 않을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DS는 이 모두를 놓치지 않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즉,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어떤 시점에서 다른 유저와 함께 하고 싶은지, 또는 혼자 플레이 하고 싶은지에 대한 구분점을 명확히 해두고, 유저 성향에 따라 이를 선택하여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게임상에서 다른 유저들의 현황이 노출되게 하여, 싱글 플레이 성향의 유저도 다른 플레이어와의 교류에 자신도 모르게 관심을 가지도록 영리하게 만들어 두었다.
누군가가 꼭 필요한 곳에 배치해둔 사다리와 다리, 밧줄 등을 이용할때는 혼자서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도, 누군지 모르는 유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게 만들어두었다. 거기에 '좋아요' 기능처럼 일반적인 게이머라면 하찮게 생각할 기능을 통해서, 무뚝뚝한 게이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스템은 DS의 전체 게임 설정( 혼자 열심히 배달해야 하는.... )과 맞물려져, 더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런 시스템 디자인 역시, 앞으로 다른 게임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
필자도 게임 디자인을 할 때, 배경스토리나 세계관에서 유저들이 받을 영향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DS의 경우, 코지마 감독이 의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괴하게 보일 수 있는 BB의 설정이나, BT가 생겨나는 개념등에서 어떤 선한 의도를 느낄 수 있다. 혈흔이 낭자한 화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긴장감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연출방식은 최고라 생각한다.
특히 필자가 이 게임을 존경하는 이유는 BB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육아와 출생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남녀 성인들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유아', '아동'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반응을 하는 경우이다.
필자가 단언컨데, DS를 플레이하는 유저 중에 유아와의 교감이 전혀 없었던 플레이어는 남녀를 무론하고, BB가 울기 시작하면, 시각적이던 청각적이던 잠시 패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필자처럼 기혼자라면, 아이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기도 하며, 그 때가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최초의 경험의 당황스러움과 긴장감을, 이 DS는 아주 현명하게 익숙해지도록 해주고 있다.
기괴해보이던 BB가 조금씩 귀여워 보이고, 귀찮기는 하지만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이 게임으로 체감하고 학습하게 해주는 것이다.
아마 어떤이들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의 지인 중에는 아기가 우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아기들 울음을 들으면 극단적으로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이는 충분히 아기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이 DS가 이런 이들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좋은 방향으로 학습하게 도와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요소를 과연 코지마 감독이 모두 철저히 준비해서 게임을 개발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근 30년간 게임 개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 코지마 감독이었고, 이런 기대감이나 존경심이 선입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지금까지 게임 인생에서 개발해오고 즐겨온 게임중에, 이 DS를 최고의 게임이라 소리치고 싶다.
필자의 다음 프로젝트에도 참고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