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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존재 Mar 06. 2016

오직 나로 살게 하는  포르투갈 마데이라

포르투갈에서 아무도 모르게 ①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고 노래하고 글쓰고 걷고 웃으며, 누군가를 위해 나를 맞추지 않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어느날부터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모두 타인에 의해 맞춰져 스스로를 검열하고 다그쳤고,  혼자있을 때도 타인이 내게 남긴 말과 행동에 대해 곱씹고 속상해하거나 러닝포인트(되갚아 줄 멘트)를 찾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관계, 관계 속에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 남겨 두고, 오직 나일 수 있는 곳, 내 생각을 말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우리나라 여행객이 잘 안 가는 곳,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은 곳, 소박하고 잔잔한 곳


직항이 거의 없고,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저렴한 곳(우리나라보다도), 검색되는 사진 상 꾸밈이 없어 보이는 소박한 곳, 과거 해상 강대국으로 자부심이 지역 곳곳에 묻어있는 곳,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을 다녀온 사람도 드물었지만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스페인을 갔다가 보너스로 묶어서 수도인 리스본 정도 찍고 돌아오는 하룻밤 여행지로 소소하게 알려져 있었다. 그마저도 다녀온 사람들이 적었다.


포르투갈에서 살아보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면 지금이 두통과 불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 사라질 수 있다면 앞으로 내 삶의 방향도 많이 바뀔 것 같았다. 포르투갈의 몇몇 도시를 며칠 씩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첫 스타트를  국내에 축구스타 호날두 고향 외에 아무 정보 없는 섬인 마데이라에서 하기로 했다.



국내에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호날두 고향으로 알려진 마데이라.

제주도의 절반크기, 포르투갈보다 아프리카에 가까운 섬,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없이 트렁크를 끌고 프랑스 파리와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을 경유해 푼샬 공항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푼샬 공항

헐..

푼샬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창 밖을 바라 봤다가 기겁 했다. 비행기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절벽 위에 활주로가 마련되어 있어 아슬아슬하게 착륙했다.  마데이라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모든 승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땡큐 베리 머치가 자동으로 흘러 나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데이라 푼샬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었다. 마데이라 지형이 험난하고 평지 범위가 적다 보니 이렇게 절벽에 다리를 올려 평평한 활주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  이 때문에 푼샬 공항에 배정 받는 스텝들은 모두 많은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평지 따위 없는 급격한 오르막으로 솟은 마데이의 높은 산세. 호날두의 단단한 허벅지와 압도적인 심폐량의 근원지.

공항에 내려 이제 마데이라를 좀 알아야겠다 싶었는데 정말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이 하나도 없었다. 공항에서 푼샬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뭘할까.. 이제부터 생각을 좀 하려는데 멀미가 났다. 토할 것 같았다. 30초에 한번 꼴로 휘어지는 험준한 2차선 도로를 질주하듯 달리는 버스. 창 밖을 내다보면 눈에 어른 거리는 낭떠러지 끝의 골짜기.  울렁이는 속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았고 1시간 쯤 지나니 마데이라의 메인스트림 푼샬에 도착했다.

 


푼샬은 마데이라의 중심지다. 항구도 있고, 회사, 대형 마트, 시장, 맥도날드 등 넓지 않은 평지에 옹기종기 밀집되어 있다. 밥값은 관광지 물가가 반영되어 1만원 내외로 런치에 간단한 스테이크나 메인디쉬를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맥도날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편이어서 자주 더울 때 마다 이용했다.



지중해성 날씨로 햇살은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한 여름에도 오래 걷는 데 부담은 없었다. 쾌적한 공기를 실컷 맡으며 꿈꾸던 대로 한국인이 전혀 없는 동네로 날아오게 되었다. 동양인 아니, 유색인종은 눈씻고 찾아 볼 수 없는 동네. 내가 원하던 자유. 팔자로 걸음을 걷던, 크게 웃던, 시니컬한 생각들을 한국말로 중얼거려도 아무도 나를 알아 주지 않는 동네. 온전히 나로써 나를 말하고 나를 듣고 나의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는 곳, 그곳은 마데이라였다.


밝게 웃는 사람들이 많았던 푼샬 시장 광장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나와 하루는 푼샬을 걸으며 마데이라의 삶을 보았고, 나머지 2일은 마데이라의 절경을 만났다. 푼샬 공항을 벗어나기 전, 공항 내 여행안내소에서 마데이라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안내인에게 3일 머물다 간다고 했더니 크게 놀라며 너무 짧다고 했다. 7일은 머물러야 마데이라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마데이라는 자연경관의 백과사전이었다.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식물과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각기 다른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며 오래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1일 4만원짜리 2인실 숙소에서 밤 10시에 찍은 마데이라의 밤.

  

해가 10시에 슬슬 지고 7시에 뜨는 마데이라의 배려 덕분에 늦은 밤까지 걷고 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더 느끼고 호흡할 수 있었다. 백인들의 틈 바구니에서 좀 신기하지만 관심 밖의 어느 동양인으로, 자유롭게 말했고 생각을 표현했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해가 질 때까지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새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점점 누군가의 나에서 그냥 나로 돌아갔다.

 

마데이라 산책 중 촬영. 산세가 험해서 어디서 촬영해도 바다 뷰가 나온다.


마데이라는 어딜 가더라도 주황색 지붕에 흰색 벽을 가진 집들이었는데, 무척 깔끔했고 집집 마다 사람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꽃과 나무를 가득 심고 키웠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마데이라의 많은 주택들은 독일, 영국, 북유럽, 네덜란드 등지의 유럽인들의 휴가 때마다 찾는 집이라고 했다. 1억이면 좋은 주택 한 채를 사서 가꿀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푼샬 중심가에는 부동산중개소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중국어로 이민 환영의 광고판을 자주 만났다.


마데이라 중턱 이상만 가도 허리 아래로 떠도는 구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데이라에서 하얀 벽과 주황색 지붕을 가진 집에서 꽃과 나무를 키우며 사는 삶에 대해 자주 떠올렸다. 그 꿈은 돌아온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조금 더 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업을 구축하여 겨울은 마데이라에서, 여름은 선선한 또 다른 곳에서 보내는 꿈을 꾸고 있다.


눈만 뜨면 만나는 끝없는 대서양, 시력 급 상승


3일간 마데이라에서 끝없는 대서양을 보고 걷고 꽃 향기를 맡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고 표현하고 내 감정을 듣고 저렴한 영어로 근근히 살아보며, 나와 내 언어에 대해 모르는 곳에서 자유롭게 조용하고 차분하고 노래하고 글쓰고 걷고 웃으며, 누군가를 위해 나를 맞추지 않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살 수 있는 곳임을 확인했다. 다시 떠나기 위해 떠났었고, 다시 떠나기 위해 다시 돌아와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아기자기했던 크리스마스 하우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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