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과는다르게 두리안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 작년에는 한 달 식비 예산의 대부분을 두리안으로 채웠을 정도로 두리안을 달고 살았다. 누군가 사준다고 해도 마다했던 두리안을 찾아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였다. 두리안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두리안의 본고장, 말레이시아에서 6년을 살고서야 혐오에서 찾아 먹어야 하는 것으로 태세 전환이 되었다. 랑카위에서 처음 두리안 맛을 보고 손절한 지 18년 만이었다.
당시 낯선 음식은 덮어 놓고 거부하는 나와는 달리 랑카위를 함께 간 친구는 일단 한 입 먹어 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편이다. 그녀가 들고 온 말레이시아 100배 즐기기와 같은 여행 책자에는 반드시 먹어야 할 말레이시아 음식 중 두리안이 있었다. 나에게 두리안은 어떤 과일인지 여기저기서 들은 건 많았지만 실체를 본 적 없는 상상의 동물 유니콘과 같았다. 두리안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몰랐지만, 어느 길목을 접어들자 참기 어려운 역한 냄새가 코를 향해 돌직구로 달려들었다. 우리는 언제 멱을 땄는지 모르는 포장된 두리안 한 팩을 샀다.
랩으로 포장된 두리안이 풍기는 구린내로도 코를 틀어막고 입으로 숨 쉬게 만드는데, 포장을 뜯어 내면 입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라며 오두방정을 떠는 나와는 달린 그녀는 차분했다. 마치 두리안과 접신이라도 하는 듯 경건하기까지 했다. 코 막고 입으로 숨을 쉬어야 했던 나는 약간의 두리안을 입에 넣어 보는 것으로 도망치듯 접신을 끝냈다. 그녀는 손으로 들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고, 생각과는 다른 맛이라며, 달달하고 부드럽다며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며 다시 한번 먹었다.
전체적인 두리안의 생김새는둥글둥글하고, 껍질은 지압판 귀싸대기 날릴 정도로 뾰족뾰족하다. 무턱대고 칼 들고 달려들어 벗겨 먹을 수 있는 만만한 과일은 아니다. 껍질은 거북이 등딱지를 능가할 만큼 딱딱해서 칼로 껍질을 벗길 수 없고, 수박 자르듯 반으로 자르는 것도 어렵다.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두리안의 뾰족뾰족한 가시 표면 어딘가에 두리안의 약점이 있다. 그곳을 손도끼의 날로 쳐내면 껍질이 쪼개지고 중앙에 노란 두리안의 과육이 있다. 과육은 우락부락한 겉 외모와는 다르게 생크림 케이크의 겉면처럼 연약하고 보드랍다.
코를 찌르는 구린내를 풍귀는 두리안 입장에서 보면 많이 억울할 것 같다. 두리안이 생산되지 않는 나라에서 산다면 두리안만큼 호불호가 뚜렷한 과일도 없을 것이다. 현지인 중에서 두리안에 혐오를 느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매 철마다 두리안 향을 맡고 성장하니 거부감이 몸에 자리 잡을 새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독한 소문으로 두리안을 알게 된다. 두리안은 딱 한 입 먹고 단박에 좋아요 엄지 척을 세우게 하는 과일은 아니다. 어떤 계기로든 한 번 정도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여러 번 자주 먹어 본 사람은 드물다. 한두 번 먹어 본 사람들은 두리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벗기 어려운 색안경을 씌워준다. 두리안 그거 사람이 먹을 음식 아니라고.
지독스러운 향기를 매해 맡으면 시나브로 그 냄새가 달큼한 향이 되고, 한번 먹어 볼까 하는 긍정적인 호기심이 발동한다. 바로 그때가 두리안에 대한 색안경이 벗겨지는 순간이며 날 것 그대로의 두리안을 즐길 수 있는 적기이다.
인생 첫 두리안은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과 두리안 쏟아지는 철에 만나 뾰족한 몸통을 막 빠져나온 신선한 과육을 먹는다면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도 바로 버리게 만드는 매력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