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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zi Jan 21. 2023

구두 수선 RM20.0

이사 후 얼마 동안은  지난 10년 동안 난 어디서 살았던 것일까라는 자조적인 자문이 잦았다.  집 밖을 나가면 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말레이시아에서 10년 산 사람답지 않게 몹시 낯 썰었고, 힘들었고, 불편했다.

 허름한 집, 너저분한 주변 환경,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어 보이는 열악한 환경의 식당들을 마주할 때마다  2004년에 첫 말레이시아 살이를 왔던 그날의 기억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한 달 가까이 새로운 환경에 부적응하다 어느 순간 시나브로 적응이 되어 이제는 더이상 집 밖의 그런 모습을 앞에 두고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너무 쉽게 보였던 구둣방인데 여기 말레이시아에서는 보기 힘들어 그 이유를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트로피컬 기후에 적응하여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닳아빠진 구두 뒷굽을 교체하거나, 눈 길 미끄럼 방지를 위해 밑창을 덧 대거나, 광을 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겠구나.

어쩐 일인지 말레이 말레이 한 색으로 덧칠된 이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게 구두 수선 장인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장소(그것이 비록 인도 한 켠을 차지한 컨테이너라 할 지라도)를 제대로 갖춘 것이 아니라 맥도날드 입구 옆에서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도구를 올려두는 작은 나무 상자를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장인은 간이 의자에 앉아 앞서 맡겨둔 손님의 신발을 손보고 있었다.  

클락스는 몇 년 묵힌 재고를 팔아 넘긴 것일까

고작 세 번 신었는데 입을 벌린 클락스 구두와,  알고 보니 실밥은 무늬에 불과했던 그래서 마찬가지로 삼진아웃을 당한 입 벌린 클락스 단화를 그에게 데려갔다.

나는 영어로, 그는 말레이어로 말을 하는데 서로 요구사항을 이해하는 건 그의 영어실력과 내가 말레이어를 알아듣는 수준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렸다.

수선후 검정 실선은 모양 아니고 레알  한 땀 한 땀


두 켤레의 신발 수선비를 각각 물으니 본드로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구두는 3링깃,  눈속임이었던 실밥 자국 위에 한 땀 한 땀 꿰매어 벌린 입을 봉해야 하는 단화는 수리비가 17링깃이었다.

기꺼이 맡기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몇 시에 와야 하냐고 물으니 3시간 후에 오라고 한다.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어서 몇 시까지 하냐고 하니 6시에 짐을 싸서 간다고 했다.



그에게 소개한 신발들을 담아 온 쇼핑백에 집어 넣으면서 그제야 그의 손에 들린 입을 벌리고 있는 새까만 운동화 한 짝이 보였다.  저 정도면 버리고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저걸 맡기는구나를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동네 '수준'을 계산하는 내가 속물 같았다.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이 운동화가 내 눈엔 버려야 할 쓰레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꿰매서 다시 신어야만 하는 신발이 아니라,  다시 신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신발일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지금 맡긴 두 켤레의 신발처럼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10년을 산 지금에서야 비로소  로컬을 흉내 내는 생활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살아 온 그 10년은 무엇이었을까.   자문으로 끝을 낸다.


#링기리링깃 #매일쓰다 #말레이시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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