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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Dec 06. 2023

나는 어쩌다 화내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착하다고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버럭 화를 낸 기억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오 남매 중 막내, 언니 오빠들과 싸운 기억도 없다. 언니들이야 나이 차이가 6살, 7살, 9살로 제법 터울이 지니 다툴 일이 없었겠지만 두 살 터울 오빠와는 싸울 법도 했을 텐데. 딸 넷에 아들 하나로 엄마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은 오빠에게 샘을 부릴 수도 있었을 테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있었으련만. 오빠에게 양보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놀기 바쁜 오빠 방학 숙제 해주는 것도 당연히 여겼다. 내게 엄마는 그냥 늘, 안 됐고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도 싸울 일은 없었다. 싸울 거리를 만들지도 않았고, 싸움이 있다면 대개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아버지로부터 유교적인 가르침을 너무 많이 받았던 탓일까. 잘 수용하고, 잘 참고, 잘 견디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싸울 일을 만들지 않고 관대하게 처신하니 친구들 역시 나와는 불편한 일을 만들지 않았다. 반듯하고 바르다는 것은 자랑이라면 자랑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나는 화내지 못하는 어른, 싫은 것을 싫다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불쾌한 것을 불쾌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미련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훈육을 위해 혼낸 적은 있어도 (물론 그때엔 훈육과 상관없이 짜증을 낸 적이 아마 있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 티를 벗은 후로는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 가끔 화가 올라올 때에도 목구멍까지 치미는 를 밀어 넣으며 생각한다.

'이게 정말 화낼 일일까, 아니면 단순한 나의 짜증인 걸까. 화를 내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해질까'

지나고 보니, 화냈어야 했을 순간들도 더러 있다. 엄마라면 그랬어야 했을 순간순간들.


어지간한 불이익을 당해도 그냥 삼킨다. 내 주장을 펴느라 주변이 불편해지는 게 싫다. 이따금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사랑을 가장한, 아니, 그분은 사랑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시는) 시아버님의 무례함에 불쾌함을 표현한 적이 없다. 남편에게조차 언짢은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지나가겠지, 잠깐 참으면 그만이지, 내 감정을 드러내면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해지겠어.'




"엄마는 이 상황에 존댓말이 나와~~?!"

다른 운전자의 거친 운전에 방해를 받아 불평을 할 때에도 공손하니, 딸이 답답해 한다. 살면서 욕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남편과 언쟁할 때 (이조차 언쟁이라 할 수도 없는, 분노를 꾹꾹 누르고 낮게 읊조리며 조곤조곤) 남편이 내게 쏴 붙인 말은 두고두고 웃프다.

"너도 나한테 쌍욕 한 적 있잖아?~!!"

내가 쌍욕을 했다니. 아마도 술기운에 했으려나?

맞다. 내가 술기운에 "야!"라고 했단다. 내 입에서 나오면 그 정도도 쌍욕에 해당한다는 해석.

본인이 백 번 화 내면 나도 한 번은 화낸다고 공격해 오기도 한다. ('나는 화낸 적 없다'라고 내가 말했을 때, 남편이 하는 말)


요즘 자주 깜박하시는 시어머니가, 내가 정리할 때까지 절대 버리지 말라고 한 내 아버지의 유품인 책 일부를 (제법 많이) 헌 책 수거하는 사람을 불러 처리해 버렸을 때에도. 나는 그저 머릿속이 하얘졌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왕 버린 걸 어쩌겠어. 내가 먼저 정리했어야 했는데, 못 그 탓도 있지.'




내 자랑이 아니다. 아둔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뿐이다. 드러내지 못한 분노는 내면에 숭숭숭 흉한 구멍을 뚫고는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었을 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둥그러지면 좋으련만, 요즘 하루하루 예민해져 자꾸 나를 들여다본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는 말도 많이 듣고 살았다. 그것도 자랑이 아니다. 부처님 같으려면 남은 화가 없어야 하는데, 나는 꾸역꾸역 화를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오늘 나는, 온 힘을 모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해 주었다. 전화도 아니고, 톡도 아니고, 메일도 아닌. 면전에서 내가 전달해야 할 말을 한 단어 한 단어 단단하게 만들어 명확 전달했다. 화를 낸 것과는 다르지만(화를 내려면 선을 넘었던 그 순간에 했어야 했다), 명확하게 나의 불쾌함을, 그로 인한 나의 분노를 (그럼에도 낮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표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 힘이 풀릴 만큼 기진맥진했다. 슬픔에도 에너지가 소모됨을 진작에 알았는데, 분노에는 그보다 더 큰 에너지가 든다. 그간 화내지 못하고 아껴 둔 나의 분노 에너지는 어디에 쓰였을까. 그 에너지로 화를 삭일 수 있었던 걸까.


최대한의 예의와 배려를 위해 선을 지왔고, 때로는 상대를 위해 그 선을 몇 번이고 넓혀주며 살아왔다. 내가 설 자리는 지켜주어야 한다. 나를 소외시키며 타인의 평을 지켜줄 수는 없다. 타인의 기분을 위해 나의 안녕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화내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이렇게 나에 관해 알아가는 어른으로 성장 중이다. 탁한 며칠이었다. 내일은 맑을 것이다. 조금 화내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화를 덜어낸 만큼 가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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