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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Feb 20. 2024

어느덧 3주, 아주 덧없진 않다

인도네시아어 어학연수 - 족자카르타

꼭 3주가 되었다. 모르는 이들과 저녁 먹는 것은 여전히 어색해, 긴장한 상태로 양껏 먹지 못하곤 밤이 되면 쪼꼬렛이나 과자 쪼가리를 주워 먹고 있다. 말은 조금, 아주 조금 늘었다. 본능적으로 재미난 것 혹은 곳을 잘 찾아다니는 편이라(워낙 한량하니^^) 수업시간에 선생님들께 오히려 족자카르타의 갈만한 곳을 알려드리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선생님들께도 그 이상의 좋은 정보를 많이 얻는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며 비교 검토 전혀 없이 대충 고른 학원이 기대 이상 좋아서 다행이다.

 

홈스테이에 나까지 다섯이 묵고 있다. 3대가 함께 사는 주인집 식구는 열을 넘는다.  노상 복잡 복잡하지만 내 방문을 닫고 들어오면 나만의 공간이다. 억지로라도 어울리려 하던 초반의 마음을 접고, 함께 저녁 먹는 시간에만 충실하자고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중이다. 수요일에 호러무비를 보러 몰려간다는데, 억지로라도 갈까 하다 관두기로 했다. 분명 나쁜 꿈을 꿀 것이다. 정서적인 것까지 위장할 필요는 없다. 근처 쇼핑몰에서 중국 서커스를 뵈준다는데, 그거나 보러 가야지. 역사의 도시라 불리는 족자카르타, 지금껏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2월은 적응기간이라 해두고, 3월엔 좀 쑤시고 다녀보련다.




건강히 지내고 있냐고 아들이 묻는다. 환경에 의해 강제 절주 중이고 매일 아침 신선한 과일주스를 마시며 저녁엔 늘 집밥과 풍성한 과일을 먹고 있어 더 건강해져 돌아갈 거 같다 하니 좋아한다. 딸아들이 그리 먹고살지 못할 걸 알아 속상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ㅜ


공부는 재미있냐고 묻는 딸에게 '너무 늦게 시작해서이제 배워 뭐에 써먹나 싶기도 한데 배움 자체는 큰 기쁨'이라고 말하니, 늘 그렇듯 딸은 준엄하게ㅋ 답한다. 

"그런 마음이면 암것도 못해. 잘 써먹어야지 란 마음으로 하자!"

늘 그렇듯 멋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명랑해지고, 문을 듣고 들어오면 가라앉는다.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긴 어렵다. '여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그런 편이다. '내 기분이 이렇다고 말해도 되나' 생각해 보면 이내 나에게 엄격해진다. 기분이 그러면 그냥, 그렇다고 감정을 흘려보내면 안 되나. 끝도 없는 자기 검열은 스스로를 질리게 한다. 마음이 안 좋을 땐 단어를 외운다. 좀 더 안 좋을 땐 지금처럼 글을 써도 좋다. 더 더 안 좋을 땐 전자책으로 한국 소설을 읽는다. 이곳에 와서 '토지'를 읽기 시작했다. 3권까지 읽었다. 세 권의 분량을 읽어내야 할 만큼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익히고 읽고 쓰는 일이 분명 마음을 나아지게 하는 건 사실이다. 


이 밤의 끝을 잡고 몇 글자 끄적였다. 그날이 그날 같아 기록을 남기기도 면구하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적는 일도 송구하다. 썼다 지우는 글처럼 잠깐 남겨본다. 밤만 되면 가라앉는 마음은 고질병이다. 지금 시간 여기 늦은 밤 0954, 거기 더 늦은 밤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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