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 이 윤 옮김, 2021년, 필로소픽
개소리라니.
참 뜬금없다.
추석 연휴에 휴가까지 이어 붙인 덕분에 긴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게 되어 10권의 책을 샀다.
배송된 박스 안에서 발견한 이 책은 처음에 사은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정가 9,000원'의 단행본이었다. 내가 이걸 왜 샀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어쨌든 개소리가 뭔지 말해준단다.
옮긴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bullshit'을 어떻게 번역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헛소리'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협잡'과 '개소리'를 비교했고, 더 나아가 '개소리'를 '거짓말'과 비교했는데 이에 대적할 단어로 '헛소리'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전달력에서 한참 뒤떨어져서 결국 '개소리'를 선택했다고 했다.
요즘은 개소리가 난무한다.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정치인과 언론은 개소리를 해대지만 정치의 계절에서 돌아다니는 개소리들은 거짓말에 필적할 만큼 강도가 세다. 트럼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만큼 정치와 개소리는 서로 합을 이뤄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짓말과 같은 말들을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생산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에서 나오는 말들을 굳이 거짓말과 개소리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런던에 있을 때, 같이 사는 외국인 친구의 태도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해주고 싶은데 마땅히 아는 단어가 없었다. 기껏해야 'Fuck' 정도. 근데 이걸로는 끓어오르는 화를 달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오래 생활한 아는 동생에게 영어로 가장 심한 욕이 뭐냐고 물어보니 'bullshit'이라고 알려줬다. bullshit? 처음 듣는 생소한 이 단어는 언제 써야 마땅할까? 나는 그 친구가 이사 갈 때 뒷모습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아주 큰 목소리로 "You said bullshit!! Fuck you!!!"라고 말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욕을 하다니. 그 이후로 이렇게 말한 일은 없었다.
아주 작은 판형의 얇은 이 책은 논문 한 편 읽는 정도의 분량이다. 그러나 이 안에는 저자의 인사이트가 어렵지 않게 담겨 있다.
오늘날 개소리의 확산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러한 '반실재론적' 신조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트리고, 심지어 객관적 탐구라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믿음의 상실에 대한 하나의 반응은 정확성 correctness이라는 이념에 대한 헌신이 요구하는 규율에서 전혀 다른 규율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성 sincerity이라는 대안적 이념을 추구할 때 요구되는 규율이다. 개인들은 주로 공동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하기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전달해보겠다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실재에는 사물에 대한 진리로 간주할 만한 본래적 속성이 없다는 확신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려는 것이 무의미하므로, 그 대신 개인들은 자신에 대해 충실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에 확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류로 드러났다고 가정하면서도, 우리 자신만은 확정적이며, 따라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옳은 기술과 틀린 기술이 모두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의식적 존재로서 우리는 오직 다른 것들에 반응하면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결코 알 수 없다. 게다가 이론상뿐만 아니라 분명히 경험상으로도 우리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특이한 판단을 지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들은 특별히 단단한 것도, 회의주의적 해체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이 책은 무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신문에서는 'ON BULL____"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트럼프 같은 인간이 대통령도 했으니 이제는 당당하게 제목을 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개소리의 전성시대다. 거짓말은 반드시 사실을 밝혀야 하지만 개소리는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난무하는 개소리에 화내지 말자. 관심조차 갖지 않으면 그 망할 개소리는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