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대한 단상
1.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살펴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때 이 장면도 카메라에 담을걸..." "그때 이 성당도 들어가 볼걸..." 하는 후회가 들곤 합니다.
여행 내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고 생각했지만 곳곳에서 이러한 빈틈들이 발견되는 것은 경이로운 자연이나 문명의 흔적들을 목도하면서도 순간순간 그것에 익숙해져 "이런 건 눈에만 담아가도 족하다"거나 "안 봐도 뻔하게 비슷할 거야" 하는 마음들이 작용했던 탓이겠지요. - 물론 여행지에서 감상 없이 카메라만 연신 눌러대는 것도 퍽이나 억울하겠지만요.
2.
회사생활을 거듭할수록 하루하루가 점점 "애정도 없이, 그리고 분노도 없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인 야근은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 버렸고 모처럼 빈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을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 아니,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회사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쪼그라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분노도 해보고 발악도 보고 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일상 속에 "익숙함"이라는 녀석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점점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회사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수록 내 삶에 대한 애착 또한 비례하여 적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쯤 되면 차라리 욕지거리와 억울함으로 점철되었던 예전의 회사생활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삶과 여행은 끝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이라는 여행에서 "익숙함"이라는 녀석에 가려 매사를 "애정도 없이, 그리고 분노도 없이" 보내다 보면, 다시 그 순간을 회상하는 할 때 미처 찍지 못한 사진처럼, 후회만 남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사에 열정적일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반복되는 모든 것이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닐겁니다.
#일상 #여행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