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개의 인간 Nov 25. 2023

언어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네일샵에서 관리를 받던 중 한 외국인이 통화를 하며 들어왔다. 전화를 끊지 않은 채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다른 손으로 전화기를 움켜쥔 채 직원에게 “glue?”라고 물었다.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직원을 불렀다. 각자 일에 몰두하고 있던 세 명의 네일샵 직원들이 외국인 주위로 모였다. 외국인이 여러 번 "glue?"라고 묻자, 직원들은 '블루?', '컬러?', '이글루?' 같이 유사한 단어로 응답했다.


외국인은 “glue”라는 단어 외에 다른 문장을 말하지 않았지만, 샵에서 글루를 살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보통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는 이유는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손톱을 가리키는 것을 보니 관리를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손톱 길이가 너무 짧고 평소에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는 사람의 손톱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Glue를 찾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샵에서는 글루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어디에서 살 수 있냐고 물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그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대화를 마쳤다. 외국인이 나가자, 직원들은 웅성거리며 나에게 집중했다. 영어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신기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화는 이렇게 간단했다:

A: Glue?

B: Glue? No, we don't have glue.

A: Ah, no?

B: No, sorry.

A: Then where?

B: Lotte Mart?

A: Ok, thanks.


외국인은 러시아 사람이었고, 이는 통화 내용으로 알 수 있었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그에게 굳이 영어로 긴 문장을 구사할 필요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명확한 문장과 문법의 정확성보다 메시지 전달이 더 중요했다.

해외 출장이나 컨퍼런스를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영어 문장 구사에 집착한다. 하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공부했던 문장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이는 대화 상대, 국적, 목적, 상황, 감정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수업에서도 회사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대본 준비 요청이 많다. 준비한 대본을 영어로 번역하고 암기하기, 발음 교정, 문장 교정 요청이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준비한 내용의 10%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대본을 준비하면 암기한 내용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인해 말을 잊기 쉽고, 발표 중 틀리면 이후로 말이 꼬일 수 있다.


모든 상황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알맞은 준비는 전체 문장이 아닌 키워드와 핵심구를 중심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글로벌 상황에서는 영어 구사보다 청중과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 구부린 자세, 청중과의 아이컨텍, 선을 넘지 않는 말, 절제 있는 제스처, 자신감 있는 태도 등이 중요하며, 기본적인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성공적인 마무리가 가능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술은 협업의 도구일 뿐 개인의 능력을 대체할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