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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애 May 02. 2021

당신의 온도는 36.5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근처' 당근마켓 이야기

'당신 근처의' 당근마켓 (설명 출처: 홈페이지)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생활정보(중고거래, 지역업체, 질문 답변, 부동산, 구인구직 등)들이 모이고, 그 정보들이 따뜻한 문화 안에서 교류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당근마켓은 중고거래에서 시작하지만 지역 커뮤니티 및 정보 서비스를 지향합니다.


당근마켓 안에서 나의 온도는 52.2도다. 


인간의 정상 체온은 36.5도라 익히 알려졌다. 하지만 당근마켓 안에서는 나의 온도가 쭉쭉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물건을 얼마나 팔았는지 양적인 기준만 따지는 건 아니다. 당근마켓 설명에 따르면, 물건도 많이 팔아야 하지만 칭찬도 받아야 하고 거절도 적어야 한다.


작년 7월 처음 당근마켓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54개를 팔았고, 8개는 팔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8개 중 4개는 누군가에게 예약됐다. (21.05.02 기준) 온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그때그때 당근을 찾았는데, 어느덧 52.2도가 됐다. 앗 뜨거워! 정도는 외칠 수 있는 온도가 아닌가? 내 온도는 왜 이렇게 높아졌을까.




예상치 못한 사연을 전하는 당근


또래가 아닌 사람들을 나는 당근에서 만났다.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주로 내놓는 건 옷이다. 2030 옷은 2030이 살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의 옷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팔렸다. 당근의 거래는 보통 대면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로 인해 택배로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나, 보통 같은 동네 주민들이기 때문에 직접 오시는 분들이 그래도 훨씬 더 많았다. 만날 장소를 정하고 나가면, 누가 나와 거래할 사람인지 찾아야 한다. 초반에 나는 당연히 내가 산 옷이니 내 또래들에게 "저기... 당근이세요?"하고 물었었다. 하지만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물건을 잘 보이게 손에 든 상태로 먼저 나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럼 물건을 보고 사람들은 말을 건다.


나의 오렌지색 스웨터를 산 건 한 중년 남성분이었다. 여성의류 코너에 내놓았기에 남성 옷이라고 착각했을 리는 없다. 나는 그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이 옷이 남자도 여자도 입을 만한 옷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정리했다. 그런데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아내 주려고 사는 건데, 색이 예쁘네요"라고 말했다. 내 속마음이 들렸던 걸까? 내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사연에 나는 아직도 사람과 세상을 알려면 멀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당근을 통해 나는 새로운 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을 내 주변 관계가 아니라, TV가 아니라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발견했다. 좀 더 예쁜 포장백에 담아드릴 걸. 그의 마음이 전해지자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지고, 뭔가 더 해주고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 맘을 알아줄 때


당근에 올릴까 말까 굉장히 고민한 가방이 있었다. 예쁘기도 하고, 상태도 좋긴 한데 몇 년 간 한두 번만 사용했다. 그저 나는 예쁘고 상태 좋다는 이유로 집 한편에 모셔둔 것이다. 그래, 좀 모셔두면 어때. 언젠가 하겠지. 했던 게 몇 년이 흘렀다. 가방은 여전히 상태도 좋고 예쁘지만, 생각해보니 가방이 전시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70% 할인가에 내놓았다. 하루빨리 이 가방이 제 주인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동시에 내 결심이 흔들리기 전에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도 가방은 금방 주인을 찾았다. 그 주인은 내게 가방을 받으면서 "워낙 싸게 내놓으셨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네, 맞아요"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정말 감사해요. 가방이 멋지네요. 여기저기 잘 쓸 거 같아요." 사실 감사는 내가 해야 하는데, 그는 내 눈을 바로 쳐다보면서 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저 내 가방을 적당한 분께 보내고 싶은 맘뿐이었는데, 그분 덕에 뿌듯함까지 더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도 아니고 ㅋ을 길게 붙여 보내는 'ㅋㅋㅋㅋㅋㅋㅋ'이란 톡은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는 당근 안에서 처음 보는 이웃과 이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5분 후에 뵙겠습니다' 톡이 울리자마자 나는 아차! 싶어 후다닥 집을 나섰다. 다행히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해서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3분쯤 지나자 딱 드는 생각. 물건은 어디 있지? 하..... 집에 물건을 두고 그냥 나만 나온 것이다..... 당근 거래에서 중요한 건 나보다 물건인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바로 거래하시는 분께 톡을 보냈다.


나: 저 죄송한데요... 제가 물건을 집에 두고 저만 나와버렸어요..ㅠㅠ 다시 집에 가는 중인데 5분만 더 기다려줄 수 있으실까요?
상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대분: 아니 당근님ㅋㅋㅋㅋㅋ 괜찮아요!!ㅋㅋㅋㅋㅋㅋ 물건을 두고 오시다니 ㅋㅋㅋㅋㅋㅋ


내 톡에 상대의 첫 반응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니까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사실 나도 내 덜렁댐에 솔직히 조금 웃겼는데, 웃을 겨를이 없었다. 얼른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제야 나도 집으로 다시 달려가는 길 피식 웃으며 얼굴이 펴졌다. 민망함 안고 다시 그분께 물건을 가져다주었다. 상대분은 나를 만나자마자 빵 터지셨다. 나는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조잘조잘 댔다. '제가 원래 이렇게까지 덜렁대는 사람이 아닌데 너무 웃기죠ㅋㅋㅋ' 그렇게 우린 재미있는 에피소드까지 더한 거래를 했다. 그가 나를 이해해준 덕분이었다.



톡으론 사람을 알 수 없다


당근마켓은 우선 톡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나는 여기서 정말 오만가지의 '톡투'를 본 것 같다. 말에도 사람마다 다른 '말투'가 있다면, 톡에도 '톡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사람의 톡투는 무미건조했다. 띄어쓰기도 지키지 않았다. 물음표나 마침표 느낌표가 없어서 글을 보고 묻는 말인지 답변인지 미루어 짐작해야 했다. 불필요한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살게요. 어디서 볼까요. 몇 시. 네' 이 정도 수준이었다. 나는 아, 딱 거래만 원하는 사람이구나. 여유나 앞서 말한 따뜻함이나 그런 건 없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톡과는 다르게 나를 향해 잘 웃어주었다. 재빨리 거래를 마치고 가려는 조급함도 없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딱딱한 거래가 아닌 충분히 여유 있는 거래를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그런 무미건조한 톡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그 사람의 성격까지 톡으로 미루어 짐작하지 않는다. 당근을 통해 천태만상의 톡투와 마주했다. 이제는 그것이 비윤리적이지 않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게 된다.




당근을 통해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났다. 54개 물건을 팔고 내가 산 물건들도 있으니 대략 40~50명 정도는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생각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기가 어렵다. 여행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 아는 사람, 익숙한 집단 안에서 만난다. 모르는 이들과 '거래'를 한다는 건, 낯선 타인들을 향한 경계심을 내려놓고 신뢰를 쌓는 기회였다. 처음 당근을 시작했을 때, 모르는 이들과의 거래에 잔뜩 긴장하고 공적으로 대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프로당근러가 될수록 잠깐의 시간 동안 어떤 이웃을 만나게 될까 기대를 한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지인을 넘어선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됐다.


어쩌면 당근이 말하는 온도는 내 온도가 아니라
이웃에게서 받은 온도가 아닐까?
내가 따뜻해서 올라간 게 아니라,
이웃들이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온기를 전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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