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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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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Mar 22. 2024

2. 너와 함께 있는 곳이 스위트 홈

어디로 가야하나 

  옆지기와 같이 좋아했던 소설이 있었다. 202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 제목만으로는 소설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고,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는 짧은, 진짜 단편소설이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온전한 자신만의 집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오던 40대 일러스트 작가 인 ‘나’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후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폐가를 자기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나간다. 평론가들의 문학적 평가들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실상 내가 좋아했던 건, 작중 화자가 찾아가는 자신의 집 (자신이 살아갈, 그리고 죽어갈)을 묘사하는 장면들이었다.


'우리가 찾던 집은 야산을 등진 작은 마을의 끄트머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중략)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마을 초입의 오래된 떡갈나무와 그 너머로 펼쳐진 밭,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초등학교와 마을의 삼거리에 있는 작은 슈퍼도 낯설지 않았다.'


  귀촌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많이 보러 다니라고. 많이 보다 보면 '여기다' 싶은 곳이 있을 거라고. 우리도 그런 곳을 찾고 싶었다. 무언가 느낌이 오는 곳. 집만 좋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소설에서처럼 마을 입구에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기자기 작은 마을이 있고 거기서 조금은 떨어진 곳에 우리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작가는 마음을 그대로 적어놓았을까?


'기역자 형태의 단층 주택. 본채는 기차 객실처럼 침실, 거실, 주방이 나란히 이어진다. 침실과 거실 앞에 툇마루가 있고, 주방 앞에는 댓돌이 있다. 주방의 오른편, 동쪽 방향에 별채가 있다. 본채와 별채 사이 라일락 나무. 마당의 서쪽에는 텃밭이 있다. 

담을 대신하는 사철나무와 낮은 대문, 거실 앞의 툇마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 오는 날 여기에 앉아 부추전을 만들어 먹었어. 

텃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텃밭에서 부추를 가위로 잘라와서. (중략)
지붕은 무슨 색이야?
하늘색.
텃밭에는 무엇을 키워?
초록색과 빨간색들.
대문은?
노란색.
좋다.'


  소설의 여러 좋은 대목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툇마루에 앉아 부추전 만들어 먹기. 어린 시절, 엄마가 비가 오락가락하는 초여름이 되면 마당에 나가 부추를 따다가 부추전을 만들어 주셨었다. 애호박을 따다가 물만두도 만들어 주셨지. 그건 부추전이나 호박물만두의 맛으로만 기억나는 게 아니라 비를 머금은 초여름의 냄새였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했던 행복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런 집에서 살아봐야지 하는 것은 그런 시간을 또 만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파트 너무 싫어.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그건 누군가와 또 비 오는 날 부추전을 부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먹으며 웃고 싶어서였겠지.

  그래, 언젠가는.

  어떻게 보면 옆지기가 귀촌을 꿈꾸게 된 건 내 탓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올 초, 명퇴 1년, 이제 실업수당도 없는 그가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할 때에도 나는 미적미적 대답을 미루었다. 나는 아직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하므로, 아직 좀 더 생각을 해보자고.


"지역은 어디가 좋아?'

"글쎄... 난 너무 먼 데는 안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서울에 자주 와야 하니까."

"그렇지. 서울에서 두 시간 넘으면 힘들겠지?"

"음.... 양평 어때? 서울하고 가깝고 교통도 괜찮지 않나? 양평으로 귀촌한 친구들도 있어"

"양평은 좀 비싸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한 한적함과는 좀 거리가 있지"


  며칠 후. 지방에 일이 있어 다녀온 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주가 좋은 것 같아"

"여주?"

"응, 평야도 넓고 햇살이 쫙 들더라고, 오늘 오는 길에 잠깐 들러보니 여기다 싶었어"

"음... 나는 좀 별로..." 그냥 여주와 관련된 좀 안 좋은 추억들이 있다.


  또 실망.


"자기 체험했던 공주는 별로야?"

"너무 멀다며."

"근데 귀촌이 이것저것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전혀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괜찮을까?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이 있거나 도움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주에서의 3개월의 체험 기간 중에 몇 군데 집을 둘러보기도 했었고, 맘에 드는 곳이 있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도 했었다. 나는 시간이 없어 같이 못 갔는데, 나중에 혼자 다시 다녀온 그는 그곳이 너무 산비탈의 경사가 가파르고 밤에는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유튜브에 나온 전국의 부동산을 다 들여다보기 전에 나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스스로도 나의 본마음을 확인해야 했고, 생각을 단호하게 말해야 했다.


"솔직히.... 나는 가고 싶지 않아. 나는 서울이 좋고, 서울에서 일할 거야. 원래 내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별로 동의하지도 않았었으면서, 왜 갑자기 귀촌 바람이 분거야? 우린 둘 다 시골살이도 안 해봤고, 지금 나는 직장일도 바쁜데 어떻게 하라구 " 나의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그는 무척 살망했다. 물론 그의 성격상 바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알았다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얼마간의 어색한 시간들이 흘렀다. 괜찮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분명 조금은 삐진 것 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의 기준에서라면 진짜 오래 기다려준 셈이다) 같이 귀촌에 대해 이야기해 놓고서는 결국 막판에 이딴 식으로 배신을 때리다니 말이다.


  귀촌한 지 10년이 넘은 친구가 말했다.

"준비하는 순간을 즐겨. 귀촌하고 나니 힘든 것도 많고 좋은 것도 많은데. 아쉬운 건 귀촌 준비하면서 즐기지 못한 거야. 돌아보디 하나하나 준비하던 그 순간들이 가장 좋았는데, 정신없이 오느라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게 아쉽네"


  축 쳐진 그의 어깨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고. 그래서 말했다.


"너와 함께 있는 곳이 행복한 곳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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