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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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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Jun 26. 2024

7. TV 없이 산을 바라보며 살아볼까나

괴산 답사 2

  박목수 부부는 아내 J가 대학생일 때 풍물 강사와 제자 사이로 만났다. 박목수는 당시 잘 나가는 배우이자 연주자였는데,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어린 여대생과 불같은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앳된 얼굴에 여리여리한 체구의 J는 사근사근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인지 아님 원래 술을 좋아해서 둘이 잘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두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은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낙 시크하다고 해야 할까 풍류 기질이 남다른 박이 한 여자와 결혼하고 정착하고 사는 게 잘 상상이 잘 안 가기도 했는데, 예술가의 꿈을 접고 목수가 된 것도 뜻밖의 일이었다.


"언젠간 목수가 돼보고 싶었어" 어린 시절 꿈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박목수의 집에는 TV가 없다. 음악과 독서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목수다. 그리고 무심한 듯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언젠가 딸내미를 위하여 집 마당에 훈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좋은 돼지고기로 베이컨을 직접 만 적도 있다. 아내를 위한 세계 여행을 꿈꾸며 일 년 중에 몇 주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딸 바보고 아내 바보다.


  박목수가 직접 지은 그들의 널따란 거실 (티브이와 소파가 없다) 나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야채부침개, 차돌박이 영양부추 무침, 문어숙회 등등 맛있는 음식이 차려지고 박목수와 옆지기는 소주로 주종을 바꾸며 밤이 깊어갔다. 입이 짧은 옆지기도 잘 먹는다.

"고급 식당 음식 같아요" 칭찬 일색이다.

  물론 내가 해주는 음식도 맛있다고 잘 먹긴 하지만.... 옆지기는 한정식집처럼 가짓수 많은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입에 맞는 한 두 가지 차려진 밥상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 맛있어요" 주는 대로 젓가락질을 하는 걸 보니, 박목수 아내의 음식에 홀딱 반한 것 같다.


  박목수 부부는 술을 좋아하지만 소식을 한다. 1년에 한 번은 단식을 한다.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절차에 따라서 한다.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여야 하고 그를 위한 단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부부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둘 다 날씬하며 무엇보다 배가 나오지 않았다. 여가시간에 TV 보며 술 마시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며 복부비만에 지방간, 저질체력으로 허덕거리는 나와 옆지기와는 너무 다른 삶이다.


  귀촌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삶의 질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안 먹어야지 하면서도 인스턴트 배달음식에 길들여져 있고, 운동이라면 비싼 돈 내고 헬스장이니 필라테스니 몇 번 다니다 말고, 휴일이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만 보는 삶.

  귀촌한다고 해서 이런 삶이 그냥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난 거실에 TV를 놓지 않을 거야"

"그럼 어디다 놔?"

"TV가 없음 안될까?"

"그럼,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혼자서 하루종일 있는 날도 있는데, TV도 없으면 너무 적적할 것 같은데".

  나는 시골집 인테리어를 아파트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구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TV와 소파가 있는. 기껏 귀촌까지 해서 아파트처럼 꾸며놓으면, 살기 좋은 아파트에 살지, 왜 시골 생활을 한담... 그런데 나도 TV 없는 생활은 좀 상상이 안된다.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눈이 떠진다. 주방에서는 이미 박목수의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것 같다.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 데크 의자에 앉아 멀리 산을 바라본다. '칠보산'이라 했던가.

 구름이 걸린 산이 좋다. 내가 귀촌을 바라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바로 산과 나무를 보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숨 막힐 것 같은 아파트 숲에서 빠져나와 자연을 바라보며 살고 싶은.

  너무 가까운 곳에서 찍어 누르는 것 같은 산이 아니라 멀리서 은근히 보이는 산의 풍경도 좋다. 아,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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