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진 ‘출발욕‘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왜 나는 삶이 기쁠때나 슬플때나 어디론가 떠날까. 왜 나는 낯선곳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깊은 외로움속에 빠뜨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이와 같은 몇가지 질문들이 떠오른 것은 성인이 되고 직접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나고 나서이다. 5년간 벌었던 돈의 많은 부분을 여행을 다니는 데 사용했고 여행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행세를 하고 다녔다. 여행을 시작한 초반에는 한번도 스스로 여행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는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여행만이 삶의 해상도를 선명하게 하고 시야를 넓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과 나만이 인정하는 특별함을 자아유지의 원천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내가 왜 여행을 멈추지 못했는지,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수많은 출발과 머무름, 그리고 도착을 반복했다. 나는 여행에 중독되어 있었다. 출발하면 해방되었고 돌아오면 불안했다.
어째서 저런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의문이 이제서야 떠오른 것일까. 아마 ’여행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나에게 “우리는 무슨관계야?”하고 계속 말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사귀기 전의 남녀관계 같은 것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한 환상과 자신에 대한 포장이 난무하는 그 아슬아슬한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는 것 처럼 언젠가 그 관계는 정의내려져야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여행이 첫만남의 설렘에 중독되어 계속 상대를 바꿔가는 행동으로 남을지, 상대와 자신에 대한 내막을 지속적으로 걷어내고서 성숙해질 용기와 함께 재시작 될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한 개인의 삶에서 자칫 숙명적으로까지 생각될 법한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듯 보이는 행위’에 대한 해답에 가까워지려면 생각보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보아야한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많은 부분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경험이나 관념들에게 큰 영향을 받곤한다. 그것들은 눈에 띄지 않게 쌓여가며 ‘나‘를 구성하고 내가 ’나’로 생각해왔던 부분들을 대체하기도 한다. 영향을 받은 정도에 따라 그것들이 받게 되는 ’나‘에 대한 지분이 결정된다. 지분이 많을수록 ’나‘의 삶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은 커지고 결국은 그 자체가 ’나‘로 정의되기도 한다.
내가 처음 여행이라고 할 만한 것을 경험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일 것이다. 그 이전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배제하려고 한다. 10살 즈음,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아버지와 친할머니집으로 들어가 살게되었다. 그에 이어 처음가보는 동네의 학교로 전학을 올 수 밖에 없었던 그 때는 평범했던 가정의 10살 남자아이로서는 일이 진행되는 속도와 그 의미를 머릿속으로 미처 따라잡을 수 없는 대변혁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10살난 자식을 데리고 아내와 이혼을 하는 경험은 당시 나의 아버지 역시 처음겪는 일이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헤어짐 또한 몇차례 경험해 보며 그때에 비해서는 삶 속에서 쌓인 경험과 정신적인 성숙도가 높아진 지금이지만 수차례 당시 아버지의 상황을 다시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줄곧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것이 쉽사리 가능할 리가 없었다. 당시의 아버지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아무리 흡사한 경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100퍼센트 공감이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다지 자랑할만한 경험도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의 간접경험도 전해듣지 못한다. 그렇게 내면에 침착되어 버린 감정은 지워내는 것이 웬만하면 불가능하다. 그런시기에 아버지가 택한 것은 나를 데리고 매주 주말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주로 캠핑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엔 나와 둘이 다니던 것이 나중에는 우리를 포함 대여섯 가족이 함께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아버지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가 이전에 속해있던 보통 형태의 가족구성(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 혹은 자녀들)을 띄고 있었다. ’이혼‘이라는 것에 갑작스럽게 엄마라는 존재를 빼앗긴 나는 매주 주말 아버지를 따라갔던 그 캠핑장에서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을 통해 이제는 사라진 ‘우리엄마’의 빈자리를 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짐작컨대 나의 아버지에게도 캠핑은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기 보다 좀 더 아버지 자신의 필요에 의한 행동에 가까웠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마음속 무언가를 다독여가며 그렇게 거의 2년간 매주 금요일만 되면 끈기있게 트렁크에 짐을 꾸렸던 것일테다.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었던 가족들은 정말 고맙게도 우리가 만나던 그 주말만큼은 합심해서 나를 많이 챙겨주고 사랑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한번더 거칠게 말해 ‘공짜는 없다’라는 인식이 10살짜리 남자아이의 머릿속에 아니 어쩌면 피부속에 가득 침착되어 있었던 거다. 당연히 그 어른들은 10살짜리 꼬마에게 대가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 나보다 어렸던)그들의 자식들을 ’아이들에게서 벗어난 어른들끼리의 시간’ 동안 잘 돌봐주고 함께 잘어울려 줌으로써 ‘주말엄마‘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라는 엄마가 사라진 순간부터 내게 채워진 족쇄같은 말은 아마 이 시기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처음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을 하는 모두가 칭찬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가끔 측은함이 묻어나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또래와 다르게 행동하고 사고하고 반응하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허물없는 믿음은 나를 ‘나는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존재이며 어른스러운 것은 더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또래보다 뛰어나고 더 성숙한 사람인 것이다’ 라고 믿으며 자라게 만들었다. 어른들의 지나가는 말로인해 형성된 자아는 나이가 들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큰 사회속에서 적응하며 내가 가진 프로그램에 혼란을 가져왔다.
‘내가 특별한 존재이며 심지어 또래보다 뛰어나고 더 성숙한 사람’ 이라고 의도치 않게 주입받으며 자라왔던 나에게 커다란 세상은 항상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처음엔 문자그대로 ‘그런말을 들어’왔지만 그 말들이 정답으로써 쌓여 내 안에 프로그램화 되고 나서부터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그런 말들을 해댔다.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았고 설령 내가 일말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저 지구에 사는 하나의 사람에 불과했다. 심지어 나이가 들수록 ‘이혼가정’조차 그다지 특별하게 취급받지 않았다. 오히려 태초부터 존재했던 하나의 가족형태처럼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졌고 혹은 받아들이려 했고 그것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으로 죄악인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다수의 또래와 다르게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나의 프로그램은 ‘이혼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초기세팅값을 업데이트하지 못했다. 그 만능소스 같은 이유가 아니라면 내가 다른아이들과 다른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어쩌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가 오류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시절 굉장히 큰 내적 혼란을 겪은 것은 그 나이가 되어서야 본능적으로 세상속의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나에게 더 이상 어른스럽다며 챙겨주거나 위안을 주지 않았고, 내 성장배경을 밝혀도 나의 행동에 대해 나만이 아는 내적승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감정적 특혜,지지 같은 것도 점점 사라져갔다.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온 또래들은 그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 나보다 훨씬 잘 적응해 나갔다. 공부에도 나름 취미가 붙었었고 성적도 곧잘 나왔지만 결국 수능도 보지 않고 대학도 가지 않았다. 2학년 이후부터는 학교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독서와 운동에만 빠져살았다. 나는 그 혼란속에서 순응하지 못하고 어쩌면 도망을 택했던 것이다. 책에 묻혀살기, 학교를 빠지고 여행가기, 운동동호회 들어가기 등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일부러 함으로써 ’평범하지 않은 것은 특별하고 성숙한 것’이라는 어린 시절 포근한 환상속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입시공부를 해야할 때 소설과 에세이에 파묻혀 살았고 평범한 일상에 지치면 혼자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운동동호회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삼촌뻘되는 주변어른들은 나를 특별하게(어른스럽게) 봐주었다. 나는 어른스러운 흉내(또래보다 기성세대들의 전유물을 많이 안다던가)를 냄으로써 또 다른 ‘주말엄마’들 속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은 세상으로 부터의 자발적인 고립을 반복하는 형태의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진 10살의 나에게 다소 지나쳤던 자의식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가 내뿜었던 방어기제였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나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6살이 된 현재는 어느정도 나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재조명하고 현실을 파악한채 행동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었지만(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만) 여전히 책과 여행, 운동은 나에게 ‘반려‘의 존재로 남아있다. 대다수가 택하는 삶이 부러운 적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지금까지의 자신을 굽히는 것이 무서워 세상에 삼켜진다는 스스로가 만든 터무니 없는 음모론에 빠져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천번도 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공부를 해 성적에 맞추어 대학엘 갔을 것이고 중퇴를 하지 않았다면 무사히 졸업을 해 (운이좋다면 바로) 취업을 해서 이제막 사회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일을 시작했고 안타깝게도 그 일들은 경력이 쌓일만큼 지속하지 못했다. 마음한구석이 어딘가 항상 불안정했다. 아마 학창시절 그랬던 것 처럼 일터에서 조차 나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이전의 포근함속으로 도망가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기 위해 돈을 모았고 처한 현실과 나의 기질이 충돌을 일으킬 때면 여지없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출발과 도착, 직장으로의 입사와 퇴사가 6년가까이 반복되었다.
지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이제야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늦은 것 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더 이상 ’스스로 내 자신을 외면하고 포장하는 일을 멈추어야 겠다’고 책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여행에 대해 써내려간 문장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에게 여행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별장이자 피신처였다. 여행자가 되면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으로부터 계속 도망치고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행지에서 모두는 ’과거’도 ‘원래 누구인지’도 관계없이 여행자로써 평등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평등’하게 대했다.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을 바라볼 때, 대화할 때 또한 그런 자세로 임했다. 내가 떠났던 각각의 여행은 책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을 항상 리셋하는’ 행위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직접씌운 가면을 벗을 용기가 없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처럼 그저 막연히 평범한 얼굴만을 선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스러워야 했기 때문에 엄마의 부재도 스스로 이해해야했고 아빠의 슬픔에서 나오는 폭력적인 분노도 감내해야했다. 나는 어른스러워야 했기 때문에 주변의 측은한 시선도 ‘억지로‘ 유쾌하게 쳐내야 했고 이 모든 혼란 속에서 도망치기만 바빴던 자신을 다시 스스로 위로해주어야했다. 성인이 되고 조차 습관적으로 도망치게 되는 자신이 싫음에도 꾸준히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포장하며 타인에게서 시작된 자아를 지켜나갔던 것이다.
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고 해서 내 삶에 큰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라는 한 개인에게는 잔인한 과정을 거친 것이지만 그 또한 단지 앞을 막고 있던 하나의 얇은 막을 찢은 것에 불과하다. 세상도 그것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누군가 들어만주어도 감사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도망치기 바빴던 시기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큰 흐름속 열심히 노력했던 이들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름의 막을 깨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깨달음은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꾸지 않지만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러니 나는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있게해준 것들과 천천히 대화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모른채 한국에 살았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는 문제 없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과 오해,환상의 범위안에서 인과관계를 매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자신을 발가벗겨보고 세상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은 절대 좌절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사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p.117
인생을 여행이라고 가정하고 따져본다면, 나는 여행하면서 시시각각 찾아오고 변모하는 눈앞의 현실들에 대해 외면하고 도망쳤던 것이다. 세상의 언어는 배우려하지 않은 채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p.35
여행의 이유에 대한 나의 답변은 대략 이렇다. 흔히 예상하는 이유나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지는 않았다. 꼭 그래야할 이유도 없지만. 책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느꼈고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이 수많은 글자속에 친절히 존재해 주기를 바라며 한장한장 종이를 넘겼다. 어쩌면 나의 계속되는 도망에 대한 정당성을 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샀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작가 조차 그렇게 생각하니 계속 여행으로 도망가야겠어’ 같은 결론을 원하면서. 그러나 출발에 대한 흥분을 되새기고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들을 상기시키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나’ 라는 한 어린인간에 대한 잔인한 고찰만을 야기시켰다.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여행에 대한 산문이 나라는 독자의 삶을 마구 파헤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서술한대로 ‘추구의 플롯’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외면적인 목표로 인해 책을 찾아 손에 집게 되었고 한장한장 넘기는 여행을 끝낸 후 자신에 대한 정면승부라는 전혀 다른 것(내면적 목표)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내 인생행로의 각도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