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가진 것이 많다.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말이 들려오면 항상 그냥 지나쳤던 이유는 내가 그 말을 곧 현실에 안주라 하는 말로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단지 간단한 위로 같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생각이 곧 나를 우울증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우울증 극복과정에서 찾아왔던 -혹은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열등감, 조급함, 자기 비하 등의 관문을 겪으면서 스스로 현재의 거울 앞에 두 눈 뜨고 서있지 못한다면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 조급함을 부르는 목표, 자기 비하의 비교대상으로 부터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500만 원이 있는 친구를 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50만 원이라도 있는 나를 보며 감사함을 느끼고,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료를 보고 열등감을 느끼지 말고 육체 건강한 채로 의식주를 책임질 수 있는 나를 사랑해 주라는 이 감사의 메커니즘은 50만 원의 재산과 육체만 건강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목소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는 자연스레 현재의 내 상태와 내가 가고자 바라보고 있는 지점을 동시에 제시해 주면서 50만 원이 있는 상태, 건강한 육체로 무슨 일이든 시작할 수 있는 상태 그 현실자체를 인식하게 하는데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택시비가 없어 택시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대차게 뒷문을 열고 목적지를 말하며 앉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자신을 한탄한다. 돈 걱정을 하지 않으며 택시를 타고 다니는 허구의 나 자신과 정류장을 어슬렁 거리는 현재의 나 자신의 괴리 그 자체를 가지고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여기서 감사의 힘은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 ‘돈이 없어 택시를 타지 못하는 가난한 나 자신’에서 ‘그 정도 거리는 걸어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는 나’로 말이다. 이것은 목적지로 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명확한 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어슬렁 거리며 겪는 시간과 감정의 소모까지 줄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런 감사도 있을 것이다. 항상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그런 상황을 겪는 사람을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타인에게 이입해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고, 목표와 욕심을 구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 없이 타인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며 자신을 치켜세울 수 있다는 위험 또한 경계해야 할 것 같다. 항상 감사의 대상과 수단보다는 그 뒤에 얻는 현실의 나에 대한 인식에 집중하고 내가 가진 도구를 활용하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 나와 친해지며 사랑한다면 내 삶에서 어떤 것이 극복의 대상이고 어떤 것이 받아들일 대상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시야가 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