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by 나경


유방암입니다.


어느 겨울 책방을 열기 전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건강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 조직 검사까지 마친 후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다. 귀에서 삐-하는 기계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선명했다. 내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당장 다음 주 명절에 마주하게 될 엄마, 아빠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가 더 막막했다. 아침 식사 할 때가 좋을까. 아니면 둘러앉아 세배하고, 새해 덕담을 주고받을 때가 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절에 나누기에는 이보다 적절하지 않은 소식은 없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나는 어떤 표정을 준비해야 할까. 선생님은 “앞으로의 치료가 잘 되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셨다. 그런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직업을 가진 이의 삶도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날 오후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내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았고, 울고 있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제야 나도 겨우 울 수 있었다.


치료받을 병원을 알아보고, 여러 검사를 받았다. 암은 초기에 발견되었지만, 가슴 전체에 퍼져 있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부분 절제 수술에서 전절제 수술로 일정이 변경되었고, 재건 성형 수술 여부도 함께 결정해야 했다.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마스크 속에서 숨어 울었다. 내 곁을 지나가는 셔틀버스 안의 수많은 사람이 주차장에서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지금 여기서 나만 울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병원은 이렇게 크고, 아픈 사람은 많은데 다들 어디에서 울고 있는 걸까.


코로나가 정말 심했던 시기였기에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 날에는 아침 7시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내일로 수술 일정 변경이 가능한지 묻는 내용이었다. 수술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면서 일정이 바뀌었고, 다음 순서인 내게 연락이 온 거였다. 몇 달을 기다린 수술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안타까움도 잠시, 그런 전화를 연달아 받으며 내 불안도 함께 자랐다. 대전에서만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이 나왔던 어느 날 쉴 틈 없이 울리는 재난 문자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책방 문을 닫았다.


수술은 9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고, 몸에 남은 크고 기다란 흔적만큼이나 긴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팔을 움직이거나 두 발로 서서 제대로 걷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 수술 부위에 느껴지는 통증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시간에 맞춰 먹어야 하는 호르몬 약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설명을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럽다는 표현의 또 다른 정의가 생겼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암을 초기에 발견한 일은 물론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암이 내 몸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조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암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는 일조차 어려웠던 시간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서 주먹을 꽉 쥐고 이야기했던 어느 날에는 아픈데도 씩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내게 씩씩하다는 이야기는 칭찬이라며 다시 한번 친절하게 강조하던 이 앞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결국은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를 포함해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라 그 사람을 붙잡고 되묻고 싶어진다. 그럼 나는요? 우리는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늘어난다.


하나의 세계도 늘 버겁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게 ‘아픈 몸’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나는 이 세계를 어떻게 미워하고 또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그림책 속에서 만난 황금 무늬 고양이는 이쪽과 저쪽 세계를 넘나들며 존재한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신묘한 고양이처럼 나도 이쪽과 저쪽 세계를 부지런히 오간다. 아픈 몸이면서 동시에 아프지 않은 몸으로.


*황금 무늬 고양이와 이쪽저쪽 세계 | 이노우에 나나(오하나) | 열매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