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속에 든 두부가 웃고 있다.
김치를 만나 반갑다고 웃고 있는 것이다. 김치찌개 속 두부는 냄비에 들어가기 전에는 순하고 고운 흰 색이었다. 그런데 김치를 만나서, 그것도 맛이 폭 든 김치를 만나 얼큰하고 시큼하고 짭짤한 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김치찌개가 풀썩거리고 끓기 시작하면서 두부의 뽀얗던 몸이 붉게 물들어도 그저 편안한 모습이다. 뜨거운 찌개 냄비 속에서 들썩들썩 끓고 있어도 태연한 표정이다. 어쩌면 찌개에 넣으려고 도마 위에 나란히 잘라놓았을 때보다도 더 안온한 모습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넉넉해진 모습으로 김치와 어우러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한 참을 김치와 속닥거린다.
그렇다고 두부가 자존심마저 다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모두부가 잘리어 김치찌개 속에 들어갔어도 아직까지 네모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의 뿌리는 본디 콩이었으나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여 비로소 두부가 되었노라고 말하는 듯하다. 매운 맛도 품어주고 신 맛도 품어주고 그 어떤 맛을 만나도 온 몸을 던져 안아주는 두부의 너그러움을 생각해본다.
김영미 시인은 ’두부‘라는 시에서 ’반야심경을 푹 우려낸 물에 간수를 넣어 굳힌다면 아마 두부가 되리라‘고 했다. 시인의 표현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시를 읽고 또 읽어본다. 그 어떤 음식에 넣어도 잘 어울리는 두부의 관용을 떠올려본다.
두부는 원래부터 그런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단단하고 동글동글한 콩이었던 두부가 뽀얗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진 모두부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한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맷돌에 불린 콩을 갈아본 적이 있다. 내가 물에 충분히 불려둔 콩을 한 숟가락씩 맷돌의 입 속으로 떠 넣으면 할머니는 부지런히 손잡이를 돌려 콩을 갈았다. 그러면 뽀얗고 부드러운 콩물이 맷돌의 옆구리로 삐죽삐죽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콩물이 다라이에 그득하게 모이면 그 콩물을 끓이고 굳히고 눌러 모양을 만들어 두부가 되는 긴 과정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래서 뒤안에 돌로 눌러놓은 두부 한 판이 떡하니 준비되어 있으면 우리는 그 때부터 시시때때로 두부 반찬을 먹어야했다.
된장찌개에는 물론이고 김치찌개에도 넣고, 만두소에도 넣고, 동그랑땡에도 넣고, 두부김치도 해먹고, 두부조림도 해먹고, 고기 안 들어간 떡국에도 두부를 넣어 먹었다. 어디에 넣어도 상대를 밀어내지 않고 그 음식을 끌어안고 한 몸이 되려고 애쓰는 두부의 고운 심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혼자 외로이 걸어간 길이리라.
두부가 걸어온 그 긴 수행의 여정은 두부 자신 만이 알고 있는 길이다. 이러저러 힘들었노라고 하는 하소연조차 없이 가만히 누군가의 숟가락이나 젓가락질을 기다려주는 부드러운 두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마음 안에 잠시 머물러본다.
단단한 콩이었을 적에는 다른 사람을 품어주기보다는 나 자신을 고집하며 다른 콩들과 어우러지고 섞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제 마음대로 굴러다니기를 좋아하고 그 누구의 간섭도 싫다며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은 채 고집을 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집에 사로잡혀 있던 콩이 물에 불려지고, 맷돌에 갈려지고, 불에 삶겨지고, 네모난 모양이 되도록 기다리는 오랜 시간을 견디어내었다. 콩은 그제야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마침내 부드럽고 뽀얀 두부가 되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주는 음식이 되었다. 그 어떤 음식에 넣어도 너그럽게 다른 맛을 품어주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두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직도 콩인 채 이 세상을 굴러다니는 나는 두부가 오른 경지를 가끔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