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 대가리가 있는 밥상을 기억하다

by 은해


어느 가정에서든 그 집의 가장이 앉는 자리는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말로써 공식적으로 정해놓은 집도 있겠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가장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식사자리에서 어디에 앉느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리가 그 공동체 내에서의 권위, 권력 따위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증조할머니가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고 그리고 우리 삼남매가 있었다. 또 고모와 아재도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가 따로 있는 구조의 집이어서 더러는 어머니가 사랑채로 또 머슴살이하던 아재들이 묵던 아랫채로 상을 들고 가기도 했지만 우리 집은 대부분은 안방에 모여서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러면 보통은 3개의 상을 차리는데 작은 개다리소반에는 증조할머니 독상을 차려낸다. 그보다 조금 더 큰 상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더러는 나보다 어린 남동생이 같이 앉아 먹는 상이 차려진다. 그 옆으로 부엌문 가까이에는 커다란 두레상을 펴고 나머지 식구들이 같이 앉는다. 할머니, 어머니, 고모, 나 그리고 친정살이 하러 와있던 고모할머니 등 그 밖의 식구들, 비주류들이 모두 앉아 밥을 먹는다.


내 자리는 부엌문 앞에 펴놓은 두레상이었다.


가마솥 아궁이에 때던 장작불 위에 구워낸 고소한 간고등어 가운데 토막은 증조할머니나 남자들 밥상에 올라앉아 있고 우리 두레상에는 고등어 대가리만 겨우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등어를 살 때 마트에서 잘라 내버리고 오는 고등어대가리가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가리도 그냥 달라고 할 걸 그랬나?’하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온다. 간고등어 맛집으로 알려진 대원식당에 고등어를 먹으러 갔더니 대가리는 댕강 잘라버리고 몸통만 구워주는 것이 아닌가. 왠지 서운하다. 생선구이 집에서도 대가리가 그대로 붙어있는 고등어구이가 나오면 더 반갑다. 그 옛날에 먹었던 간고등어 대가리 맛을 떠올린다. 간고등어 대가리에 붙어있던 짭짤하고 고소하던 고등어 맛을 떠올린다. 아주 맛있었지만 그 양이 적으니 언제나 아쉬웠는데 그나마 짭짤한 덕에 밥이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가곤 했다.

그 땐 그것도 참 맛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그 것조차도 어린 손녀에게 양보하고 실컷 먹지 못했던 할머니나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것은 과연 공정한 분배였을까.

그렇다. 그 당시의 사회를 지배하던 가치관에 따르면 그것은 공정한 분배였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남의 집 사람이 될 딸들에게는 고등어대가리면 충분했다.


잘 생각해보고 앉아야한다. 어떤 종류의 모임이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 가서는 ‘나’는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잠시 주저하게 된다. 그럴 때 누군가 아니 그 모임의 주최자가 ‘이리로 앉으세요.’하고 자리를 권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앉아도 좋을 적당한 자리를 찾느라 잠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길지 않는 시간이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그 자리가 가지는 권력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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