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엄마는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었다
감자 삶아 먹는 날이다.
감자를 한 양재기 담아다 놓고 닳은 숟가락 두 개를 가져온다. 할머니와 엄마가 마주앉아 감자를 긁는다. ‘사악 싸악 싹’하는 소리가 난다. 칼로는 감자를 깎는 거지만 닳은 숟가락으로는 감자를 긁는 것이다. 닳은 숟가락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을 ‘딿은 숟가락’이다. 백이면 백 그렇게 발음했다. 쓰고, 쓰고 또 써서 딿은 숟가락을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숟가락을 얼마나 쓰면 닳아서 감자 깎는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어쨌든 할머니랑 엄마는 감자를 깎지 않고 감자를 긁어서 삶아주었다. 아마 그 숟가락으로 가마솥에 눌은 누룽지도 긁어먹었던 걸 보면 가마솥 바닥을 긁으면서 닳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으면 칼로 감자를 깎는 것보다 일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어디 그 것뿐인가. 모든 야채나 과일이 그렇듯이 껍질 부분에 좋은 영양이 많이 들어 있는데 칼로 껍질을 깎을 때보다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어서 깎으면 영양소 손실도 적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일하는 속도도 빠를 뿐 아니라 영양 손실까지 적은 방법이었다. 또 감자를 삶아 놓았을 때도 칼로 깎은 감자보다 닳은 숟가락으로 긁은 감자가 더 포슬포슬하고 분도 더 잘난다.
할머니와 엄마는 사이좋은 고부였다. 둘이 마주 앉아 감자를 긁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할머니와 엄마가 감자를 긁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는 했다. 감자 한 알을 왼 손으로 잡고 오른 손으로는 껍질을 빠른 손놀림으로 긁어낸다. ‘사악, 사악’하는 소리가 왠지 좋았다. 재미나게 들린다. 몇 번인가 나도 해보겠다고 졸라서 시도해 보았는데 서투르고 속도도 느리고, 또 닳은 숟가락의 끝부분은 거의 칼처럼 날카로워서 위험하다고, 하던 숟가락을 엄마한테 뺏기기도 했다.
‘사악, 사악, 싸악, 싹, 싹’ 감자 긁던 소리를 기억한다. 할머니와 엄마가 마주보고 앉아서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던 모습이 나는 좋았다.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서 할머니나 엄마처럼 감자를 ‘사악 싸악 싹’소리를 내가며 긁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감자를 긁는 것은 할머니와 엄마였고 나는 그저 삶아준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다정스레 마주 앉아 감자를 긁던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은 한 점의 정물화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감자를 깎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닳은 숟가락이고 옆에 앉아 구경하던 어린 나는 새 숟가락이었다.
요즘은 더 이상 닳은 숟가락도 없고, 감자 깎는 칼이 따로 있어서 닳은 숟가락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나는 그 닳은 숟가락 생각을 더러 해보게 된다. 사이가 좋은 고부였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감자가 담긴 양재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서 닳은 숟가락으로 “사악, 사악‘하는 소리를 내가며 감자를 긁고 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왠지 행복해진다. 그 두 사람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여물어가고 있었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났고, 엄마도 더 이상 감자를 긁지 않는다. 나는 그 시절의 엄마나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
그 시절 감자를 긁던 닳은 숟가락 만큼이라도 요긴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