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의 속살을 쪼개다가 나는 왠지 마음이 서럽다
그리움은 붉은 색이다.
붉은 석류 알처럼 한 알 한 알 가슴 속에 맺혀 있다가 입 안에 넣고 맛볼 때마다 붉게 터져 나오는 그런 것이다. 더러는 시고 더러는 달콤하다. 아니 얼마간은 시고 아프지만 그 속에 빠져있을 때는 한 없이 달콤하기도 한 것이다. 석류를 반으로 잘라서 하얀 접시에 담아두었다. 안쪽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다시 손으로 더 쪼개자 석류 알갱이들이 하얀 접시 위로 떨어진다.
촉촉하고 싱그럽고 아주 곱게도 붉은 석류의 속살이 접시로 떨어질 때 마다 나는 왠지 마음이 서럽다. 석류 한 알을 다 쪼개고 나서 보니 내 손에서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건 내 마음이 아파서다. 석류 알갱이를 쪼개다가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늘 화단을 가꾸었다.
아주 어릴 때 살던,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골집에도 목단 꽃이 피던 화단이 있었다. 면서기였던 아버지가 군청으로 발령을 받아 군청소재지로 이사해서 살았던 예배당골 작은 집에도 화단이 있었고, 몇 년 후 면소골에 있는 좀 더 큰 집을 사서 이사했을 때도 아버지는 담장 밑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담장 밑으로 제법 길쭉한 빈 터가 있었는데 반 정도는 상추나 옥수수 같은 것을 심었던 텃밭이었고 반은 화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실효성을 따지자면 그 땅을 전부 텃밭으로 만들어 더 많은 푸성귀를 심어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반은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기 시작했다. 채송화나 맨드라미도 있었고 나팔꽃이 아버지가 매어둔 줄을 따라 피어올라가기도 했는데 대문 근처 한 구석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시골에 어떻게 석류나무가 있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아마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가끔 도청이 있던 대구까지 출장을 가곤했는데 그럴 때 사 온 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그 석류나무를 갖다 심은 지 몇 해나 지났는지 어느 해 가을에는 제법 실한 석류가 열렸다.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면서 나를 불러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화단에 핀 꽃 한 송이, 작은 열매 하나도 무척 소중하게 가꾸는 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객지에 나가서 공부했던 나는 주말이면 한 시간쯤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다녀갔다. 차멀미가 심해서 고생하던 나에게 아버지는 석류하나를 따서 쪼개 주면서 차 안에서 먹으라고 했다. 멀미가 나려고 하면 수분이 많고 신맛이 나는 석류를 한 알씩 떼어 먹으면 도움이 되었다. 세심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그 때 먹었던 그 석류의 맛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마트에 갔다가 이란 산 석류를 몇 개 사왔다. 노란빛이 도는 붉은 겉껍질이 너무 예뻐서 사고 싶었고, 석류가 여성호르몬의 재료가 되는 에스트로겐이 많아서 여자들에게 좋다기에 샀다. 옛날에 화단에서 키우던 아버지의 석류나무가 생각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석류를 쪼개서 한 알씩 먹다가 아버지 생각을 한다.
우리 곁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함께 화단을 가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아버지가 마흔이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훌쩍 우리 곁을 떠난 후로 우리는 더 이상 화단을 가꾸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은 식구들의 마음속에는 붉은 열매를 맺는 석류나무 한 그루씩이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면서 석류 알이 알알이 영글어 갔다.
붉은 석류 알처럼 알알이 남아있는 가슴 속 그리움이 올 가을에도 영롱하게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