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눌님의 말씀을?

참 하늘도 무심하시다

by 은해


“공자께서는 사십에 불혹이라 하시었습니다.”

“그 어른께서는 길을 구하여 생애를 걸으신 분이니까. 이 아비는 일개 필부이니라. 내 동학의 접주로서 하눌님의 말씀을 어긴지 이미 오래이거늘, 나는 구도자가 아니다. 끝없는 싸움, 싸움의 회오리바람 속에 나를 잊고 싶은 게다. 그리고 죽음이 남아 있을 뿐이지.”

-토지 1부4권 272쪽에서 인용/마로니에 북스-


토지를 읽다보면 동학(동학 또는 동학혁명 또는 동학란 또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불리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위의 인용글은 김개주와 김환 부자가 나누는 대화다.

김개주는 동학의 접주로, 후에 전주 감영에서 효수당하는 인물이고, 김환(구천이)은 김개주가 연곡사에 불공드리러 온 윤씨부인을 겁탈하여 얻은 그의 아들이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동학에서 말하는 ‘하눌님’에 대한 것이다.

구글링해서 알아보니 한울님은 동학/천도교의 신앙대상을 가리키는 천주 또는 상제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주님(하느님)과 같은 분?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도 같은 분?

그렇다면 유교경전에서 말하는 상제도 혹시 같은 분?


그렇다면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할 때의 그 천(天)도 같은 분? ‘하늘(天)도 무심하시지’ 할 때의 그 하늘도 같은 분?

그 분은 대체 어디에 계시다는 말인가?

저 높은 푸른 창공 그 어디에선가(Somewhere Upthere) 우리를 굽어보고 계시다는 것인가?

수많은 문화권에서 말하는 저 높은 곳 어딘가에 계신 그 분을 찾아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애타게 불러보지만 그분은 오늘도 대답이 없으시다.


전쟁으로, 지진으로, 쓰나미로,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도 침묵하신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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