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원수를 낳고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by 은해


“한조아재 아들이, 그러니까 열아홉 살이어요. 진주서 물지게품을 팔아 사는데 고생이 말할 수 없고, 그래도 제 아버지,”하다가 봉순은 말을 끊어버린다. 옛날로 끌어당기는 감정의 줄을 뚝 끊어버리듯이, 옛날의 말투, 옛날의 습관이 뛰쳐나올 듯 두려웠던 것이다.

“그 아이도 칼을 갈겠군, 조준구한테.”

서희가 봉순이 하려는 말을 이어주듯 말했다. 길상이 중얼거린다.

“원수는 원수를 낳고 또 원술 낳고, 끝없는 놀음인가 부다…….”

토지 2부3권 198쪽에서 인용/ 마로니에 북스


자식이 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정한조는 자존심 강하고 바른 말 잘하는 평사리의 농부인데, 조준구의 신고로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왜 헌병에게 총살을 당한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니고...’라는 표현이 있다.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닌데 그냥 용서하고 넘어가자는 의미다. 그렇다면 부모 죽인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하는 일이라는 말도 된다.

내 부모를 죽인 인간이 내 눈 앞에 살아있다면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원수를 갚는 것이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일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부모 죽인 원수를 갚는 것이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세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다.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가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 과정에서 햄릿은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이자 클로디어스의 오른팔인 폴로니어스를 죽인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본 오필리어가 미쳐서 죽고, 그러자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도 복수를 하려고 햄릿을 죽이기 위해 결투를 벌인다. 그 결투 과정에서 결국은 숙부 클로디어스도 죽고 그와 재혼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도 죽고, 레어티스도 죽고 햄릿 자신도 독이 묻은 칼에 찔려 죽는다.


햄릿은 처음에는 복수하는 사람이었지만, 플로니어스를 죽인 후 복수의 표적이 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원수는 원수를 낳는다.

누군가 먼저 그 고리를 끊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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