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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줌 Nov 27. 2021

나를 버려주오-2

(시)백만년쯤잠들었다깨고싶다


<나를 버려주오>-2




여보시오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고

내 몸을 꽁꽁 묶어

깊은 산에 버려주오



덜컹대는 고물차를 타고

자갈길, 산길을 지나

한 번도 얼음이 풀리지 않은

협곡 깊은 곳에 버려주오



무거운 등짐으로 나를 지고

가파른 언덕길 올라

매서운 눈보라 속 숨죽여 지나면

마침내 펼쳐지는 만년설 산등성이에 오르리니



들개도 살지 않는 험한 곳

'생명 없음'의 깃발 아래

나를 던져주오



누구도 살 수 없는 그곳에서

온몸의 혈관이 얼어붙는 날이 오면

비로소 내 육체가 정결케 되고



내 심장까지 얼어붙는 날이 되면

비로소 내 영혼이 구원을 얻으리니



오랜 후에 누가 묻거든 그리 말하시오

눈알은 그냥 두었다고

손목도 그냥 두었다고

다만 그것이 미안하였다고.



그리고 잊으시오

해 아래 새 것 없듯

오늘도 겨울바람 부는 날이면

길 잃은 나그네 끝없이 유전(流轉)하리니.



삽화 고현경 화가


#백만년쯤잠들었다깨고싶다 #나를버려주오 #김봄 #유니줌 #삽화 #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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