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울림

-내가 사는 방식

by Sapiens

아침 630, 여느 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오늘은 오전 9시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분주했을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시간이 되어주었다.

밤사이 얼굴 위로 뿜어낸 각종 피지와 분비물들을 씻어내기 위해 의식의 흐름대로 화장실 세면실로 걸어갔다. 하루의 루틴인 양치를 하기 위해 항상 기다리는 연보라빛 칫솔에 치약을 짜 치아를 닦는다. 컵에 물을 담아 입안을 서너 번 헹구고 나면 폼클렌징 크림을 왼손에 듬뿍 짜내어 두 손바닥으로 비벼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낸다. 두 손으로 얼굴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아내곤 깨끗한 물로 여러 번 씻어낸다.

그리고 나면 하얀 세면대 위 거울 옆, 수납장 안에 잘 정돈되어 포개진 채 앉아 있는 카키색 수건 하나를 꺼내 든다. 양손으로 수건을 얼굴 위에 얹어 물기를 닦아낸다. 그제야 화장대 거울 앞 의자 위에 앉는다.

그 순간, 의식의 흐름은 샘물을 뿜어내듯 특별한 감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평범한 어제와 같은 일상의 시작이지만, 나의 신체 모든 부분은 조금씩 성장하며 변해 있었다. 시각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나의 주변 모습은 분명 어제와 다른 하루가 펼쳐지고 있었다.

미세하지만 눈가에 있던 주름의 깊이도 깊어졌을 것이고, 머리카락의 길이도 0.3 밀리미터 정도 자랐을 것이다. 손톱 발톱의 길이 또한 하루만큼 자랐다. 내 이마 왼쪽 눈썹 위에 자리한 지름 10밀리미터 크기의 검버섯도 아주 조금은 커졌을 것이고, 누리끼리한 옅은 갈색의 농도 또한 희미하게는 짙어졌을 것이다. 나의 몸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모든 내장 기관들도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육체는 나를 지탱해주느라 그만큼의 노화로 변화된 모습을 한 채 오늘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내 침대 머리맡에 있는 협탁 위에도 하루만큼의 먼지가 쌓여 있다. 분명히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이다.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제와 너무도 흡사한 하루를 아무 의심 없이 반복되고 있는 똑같은 하루로 맞이하고 있다.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던 오늘이라는 사실을 오늘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는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작년 가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계곡물이라 생각한다. 앞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아무런 의심 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위안 삼기도 한다. 그 물과 그 나무의 미세한 성장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린 그들을 자기만의 시선과 기준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재단한다.

내 젊은 날의 일상들도 그렇게 반복되는 많은 시간 속에서 흘러 지나갔다. 항상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반복되는 생활에 지겨워하기도 했으며, 계절이 변하는 삶 속에서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또 다른 변화만을 갈구하며 살고 있었다.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갈구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무언가 갈구하는 자신의 관심조차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이 만든 허상만을 좇으며 타인의 삶을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안하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 맞서다 부딪히고, 때론 넘어지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타협하는 법을 터득하고 수용하며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특별한 감정이 선물처럼 찾아오기도 했다. 살아온 댓가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 온 나에게 잠시 멈춰서서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속삭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핑크 마티니의 초원의 빛을 들으며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내 육체를 잔디 위에 기대어 보듯, 나의 일상의 모습 속에 잠시 정지버튼을 눌러본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빠져나와 잠시 나의 세상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의 몸, 내 마음의 움직임, 내 감정의 흐름, 내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를 소중히 만져보며 느껴본다. 그것은 내 삶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집중해서 온전하게 그 시간을 만끽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전하는 미세한 신호들을 해석하고 공감하는 일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다.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와 관계된 모든 삶의 요소는 항상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생성되어 변화되고, 성장하며 소멸해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다.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포근한 이불 속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어서, 거실로 걸어가 커튼을 걷어낼 때 거실 바닥을 향해 비추는 따스한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음악을 틀어 놓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해줘서 감사하다.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 속 빨래를 털어내며 두 손으로 옮길 수 있어서, 젖은 빨래들을 하나하나 건조대에 널 수 있는 팔다리가 아직 온전히 움직여 주어서 감사한 순간들의 향연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누리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감정이 찾아온다. 그렇게 매일 난 어제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는다.

오늘도 잊지 않고 나에게 찾아와 준 평범한 아침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울림이 있는 아침이다. 그 울림을 느끼며 사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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