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유

-타인은 나밖의 또다른 나

by Sapiens

나는 이 세상에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것은 축복이라 말하며 세상에 태어난 순간 사랑해주곤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결실로 잉태해 부모와 친척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 속에 존재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과 집착, 그리고 무관심, 부모의 부재나 사별로 인한 이별, 그리고 방목이나 방치 등의 다양한 양육환경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든 성장한다. 육체적 성장은 질병을 앓지 않는 한 멈추지 않고 대나무가 자라듯 쑥쑥 자라난다. 하지만 정신적 성장은 꼭 육체적 성장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양육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의 뇌는 성장 과정의 환경 속에서 한 인간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자라나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인간은 다양한 성향을 품게 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 속에는 피어나는 독버섯 같은 트라우마들은 편견들과 선입견들로 잘못된 사고 주머니들을 잉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그 독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환경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문제는 발생하며, 모든 순간 일어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길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관점을 전환 시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그것을 내가 알아차렸을 때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 상황 속에서 대부분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삶을 포기하거나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점을 전환 시켜 바라볼 수있는 힘이 있는 사람은 그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그게 깨달음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련을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린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바꿔가며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을 때 너무 기뻐할 일도, 슬플 때 너무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도 아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이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은 행복을 좇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낄 때 행복감은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면 현재 세상을 볼 수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들에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중증 환자가 있는 병원 대기실에 가본 적이 있다면 내가 얼마나 건강한가?’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인지할 수 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두 부류가 있다. 어떤 이는 마지막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음을 감사히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것일까?’ 하면서 원망하는 시간으로 주어진 시간을 채우기도 한다.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거나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사라진다. 그것이 우주의 원리이다. 따라서 우리도 언젠가 왔던 길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서로의 돌아가는 시간이 모두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며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의 시간을 채울 것인가?’인 것이다.

가치 있게 산다는 것, 그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서로 어울려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프면 누군가 치료를 해주고 내가 어릴 때는 대부분 부모가 양육을 해주고 누군가가 나를 교육해주었기 때문에 지금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혼자 잘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타인은 나 밖의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없다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활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도 내 소유물이 아닌 단지 내 몸을 빌려 세상에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부모라는 이유로 그들을 좌지우지 하려고 해선 안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있다. 살아 숨 쉬는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며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각자 무엇을 느끼며 이루어가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인것이다.

나는 미숙한 나로 태어났지만, 세상 속 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서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련들이 온전한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 밖의 또 다른 나인 타인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다. 그들과 소통하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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