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오랑 Apr 03. 2023

#시가 있는 봄(69)-dear 마중물

 Dear 마중물

                         재환 

자네 여기 있었네 그려

이런 산골에나 들어오니 자네를 만날 수 있구먼

반갑네, 얼마만인가 근 오십 년은 된 것 같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우린 죽마고우(竹馬故友) 일세     

내가 여섯 살 때

펌프라고 불리던 기계 옆에서 자네는 처음 만났네

개울에서 왔는지 웅덩이에서 왔는지 기억도 없네

신기한 것은 자네나 우리 아버지나

남들보다 앞서길 좋아했다는 점이야

아버지는 남이 안 하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이셨지

그래서 동네사람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고

동업자들로부터는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을 자주 듣곤 했지

그런데 말이야

유명을 달리하신 지가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왜 그리 그리운지 아는가     

자네는 영웅이었네

자네가 몰고 온 물로 한여름에 목마른 사람은 갈증을 달랬고 
 시원한 물을 등에 끼얹으며 더위를 이겨냈지 
 깊은 땅 속에 가서 시원한 물을 데리고 올라오는 

듬직한 자네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네
 마중물 자네는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 뒤에 숨어 있었지 
 언제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명수를 퍼 올리는 원동력이 되어 준거야 
 사람들은 쇠붙이가 귀하다며 펌프와 친해지려 했지만 

나는 그보다 향상 그 옆에 자리했던 자네가 더 신기했네

많은 양이 필요한 것도, 더구나 깨끗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낼 줄이야     

지금 나는 힘과 용기를 잃고 방황하는 중이야  
 마치 그때 너처럼 격려와 관심, 칭찬이 필요한 시점이야

네가 파이프를 타고 땅 속 깊이 내려가는

결행을 감행했던 것처럼 난 지금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야

비록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중물이란 네 이름조차 생소해 하지만
 그럴수록 귀중한 자네가 그리워지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그리워지는 사람이 되고 싶네.                         

작가의 이전글 [적계지에서 온편지]-(3)고목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