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된 곳에서 나오기
일부러 먼 곳으로 돌아간다. 자꾸 저 앞 전봇대에서 돌자는 마음이 든다. 트레이너가 없으니 ‘하나만 더’를 외쳐줄 사람이 없다. 나 스스로가 나에게 채직찔을 해줘야 하는데, 은은하게 빛나는 가로등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 저기까지만 가자.’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다시 먼 곳을 향해 걷는다. 사람은 움직이면 하게 되어 있다. 계속되는 목표와 달성 시 주어지는 보상이 없으면 쉽게 지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은 참 미련하고, 똑똑하다. 깜박거리는 가로등을 향해 뛰어 본다. 이미 땀은 비 오듯 흐르고, 9시 무렵 퇴근한 한 인간에게는 가혹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버리면, 나는 두 배를 가는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돌아와야 하니 말이다.
솔직히, 내가 가질 수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여전히 나의 내면에 깊이 숨어 있다. 언제든지 손을 들고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녀석들이다. 단지 요즘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그 감정들이 조금은 억눌려 있다.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무슨 이상한 함수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존재는 점점 알 수 없어진다.
나는 지금 거대한 시련 속에 있다. 아니지. 거의 탄생의 순간을 조금 지나면서부터 시련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좋은 것보단, 좋지 않은 것을 먼저 배웠다. 배움이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부모로부터 받는 것은 비단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님을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알아차렸다. 가난 그리고 가난. 남들로부터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욕망과 희망, 내가 정말로 원하는 꿈같은 것들은 그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나를 시련의 공간으로 집어던진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욕망과 희망으로 나를 몰아갔다.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나는 곧장 배신의 형벌에 처해졌다. 기요틴에 내 목이 날아가지 않았을 뿐이지, 서슬 퍼런 눈초리가 내 목덜미에 스치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가. “거대한 시련을 마주한 사람은 그 안에 매몰되는 법”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수 십 년을 그 안에 있다 보니 나는 나의 삶에 매몰되었다. 나의 세상은 모든 것이 고통이며 비참하다고 믿게 되었다. 행복과 기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은 소수의 것이며, 마치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한 책임지지 않아도 책임을 지어야 하는 삶, 잘못하지 않았어도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삶, 걱정과 근심은 자기 계발하듯이 갈고닦는 나의 모습은 저 말처럼, 매몰된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아무 곳에서나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잃었다고, 살려달라고, 그러니 내 삶은 왜 이런 것이냐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사자성어 ‘줄탁동시’처럼 밖에서 내 알을 쪼아줄 사람이 없다면 나 스스로라도 열심히 쪼아야 한다. 앞에서 말한 나의 사소한 일상처럼, 스스로 다독이며 더 멀리 걸어가는 수밖에. 마음이,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래도 더 걸어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참 다행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