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 페이지
한참을 걷고 있었다. 대개 이 시간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혼자 걸을 때도 더러 있을 정도다. 저 멀리 킥보드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바퀴가 보였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며 오는 아이들 셋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용한 이곳에 속으로 ‘그럼 그렇지’를 외치려던 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더라. 얼떨결에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우리가 마주친 시간은 길어야 1-2초의 순간이었다. 나를 스치면서 ‘우와 키가 엄청 크시다’며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주 사회에 찌든 나쁜 어른이었다. 그 친구들의 격 없고, 순수한 인사에 저 멀리 보이는 반환점까지 기쁨과 부끄러움을 잔뜩 품은 채 산책할 수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았지만, 내가 설 그 길에서는 이런 인사쯤이야 일상이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그런 인사가 제법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지금부터라도 인사 한 번 더 해보고 가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수 천 번을 강조해도 부족한 ‘삶은 어렵다’라는 말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지식 안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특별히 더 어려운 삶이다. (어떤 탁월한 가설이 존재할 수 있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본능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과 함께 의미를 부여해야 살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가 생기는 순간, 삶은 정말 힘들어진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갈등은 수많은 피를 지구에 뿌려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먹고 싸는 섭식과 배설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다른 종과의 먹이 경쟁은 하지 않지만, (물론 전 지구적으로 보면 부와 가난의 문제를 일종의 먹이 경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균형 있게 먹어줘야 이 몸이 적당히 돌아갈 수 있다. 하물며, 식의 문제를 남아 의와 주의 문제로 가면 갈수록 복잡해진다.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각자의 삶은 다양한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무슨 고난과 역경이 이렇게도 많은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래도 영웅들은 높은 확률로 비슷한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비참하게 끝날 때도 많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삶을 괴롭히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았다.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너무 억울하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고, 내 안에 조금 남은 것을 나누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나 보아라. 이제 죽는 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모든 인간의 서사는 극복의 서사로 끝나야만 한다.”
다시 말해, 불안하고 비참한 우리의 삶은 반드시 극복된 삶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비정한 주문이다. 이 주문을 외우며 나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는다. 먹다 흘린 빵 부스러기 같이 아주 작다. 그렇지만 그 작은 것이 어떤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식량이 되듯이, 나의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희망은 거대하게 커지리라 믿는다. 겸연쩍게 건넨 인사 한 마디로 나는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극복의 서사 한 페이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