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방황하겠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환경의 압력과 여러 개체들과의 경쟁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점차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인류였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충분히 가능성 높은 이론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새겨진 이 떠도는 삶에 대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농업 혁명 이후로 인류는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반대로 단점도 명확하게 나타났다. 가치가 생기고, 재산이 생기며, 계급이 생김으로 인해 부족 간의 다툼은 점점 잦았을 것이다. 이윽고 전쟁까지 일으키는 인류의 무자비함은 또다시 인류를 다른 곳으로 떠돌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구 최대의 포식자이자, 단일종인 인류는 그 자체로 지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수만큼이나 방황하며 헤매기도 했다. 때로는 오히려 그 방황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발전은 양면성을 보이며 서로에게 다시 칼날을 겨눌 만큼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 외계 행성으로 테라포밍까지 연구하고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대체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이런 방황과 헤맴은 조금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사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적당한 방황과 유리함, 떠도는 것이 있어야 한다. 쉽게 간 길은 쉬웠던 만큼 얻는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인생이 늘 쉬웠으면 좋겠다고 투덜대지만, 막상 살아보니 인생이 절대로 쉽지도 않거니와 쉽게 얻어진 것들은 다시 그 곱절로 값을 치렀다. 그런 의미로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떠나고 정착하고, 또 떠나고 정확히는 떠돌이 삶은 안타깝지만 온전히 우리 것으로 내려왔다고 봐야 한다. 이제 단지, 인류가 이 끝에서 얻는 게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상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게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여전히 그 사실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정으로 표현된다. 불안이며, 슬픔이며, 다소 필요 없어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님 말고’식의 말들에 쉽게 긁히고, 온갖 모사꾼들에게 회자되며, 하지도 않은 일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되어 있는 이 못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결국,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겠다고 그 어린 시절부터 다짐했지만, 돌아서면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누구보다 높게 다리를 들어 영역표시 해대는 몸집 작은 강아지처럼, 그렇게 커 보이려고, 나 작지 않다고, 세상에게 외치며 살았다. 그러면 무엇하는가. 나는 또다시 떠돌게 될 텐데 말이다.
더 이상 불안은 나에게 병이 아니다. 나를 소개하는 글에도 나와 있듯이, 정말 나의 에너지원이다. 주유구에 기름을 채워 넣듯이 나는 나를 불안으로 몬다. 그리고 방황하고 헤매길 원한다. 그래서 열심히 방황하고, 열심히 떠날 것이다. 수많은 방황 끝엔 돈오와 함께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돌고 돌았으니 필히 분명 얻을 게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