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불역열호 :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by 이뉴

전직이 가르치는 일이었다 보니 나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인생이 꼬일 때로 꼬여 버린 어느 날 어느 순간, 이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자부심이 산산이 박살 났다.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나름 정제된 언어로 말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대부분의 언어는 날 것 그대로였고, 어떠한 필터링도 없이 감정 그대로 내뱉고 생각 그대로 내뱉는 (적어도 나에겐) 아마겟돈의 현장이었다. 사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다 이해할 법도 한데 말이다. 일종의 거부 반응이었을까.


그들 사이에서 7년 정도 머물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대부분 상처를 받는 일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내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이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믿음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나의 모든 경험을 다 훑어보았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도 나와 있듯이 ‘아님 말고’ 식의 말들이 너무 성행했다. 보기보다 강한 나인 줄 알았지만, 보기보다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는 그 시절을 모조리 견뎌내었고, 버텨내었다. 하지만 값은 톡톡히 치렀다. 나는 더욱 갈렸고, 무색무취의 사람으로 남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색도 냄새도 강한 개성적이고 톡톡 튀는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이해가 안 되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모양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하고 각진 곳을 모조리 갈려 둥근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니 쉽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방구석에 처박혀 곰곰이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튼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배움이 짧았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죽음까지 공부해야 하는 불쌍한 인간의 삶’인데 하물며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런 시시한 일은 당연히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 교만과 자만에서 나온 인간에 대한 덜떨어진 이해는 내가 상처받기에 딱 좋았다. 더 심하게 말해 그 상황에 나는 한낱 먹잇감에 불과했다. 덥석 덥석 물어버리는 맛 좋은 이끼였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상처받을 일은 없다고. 나는 많이 배웠고, 그들은 못 배웠다는 철부지 없는 생각에서 기인한 이 안타까운 현실은 결국 내가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저들이 못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못 배운 것이었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다듬어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퇴사를 앞둔 요즘, 이제야 이 사실이 깨달아진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후회로 남는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했던 그 부족한 면을 이해하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도 소중한 것을 배우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헤르만 헤세의 산문집, “방황”이 생각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날마다 배우고 있다는 건 오늘도 어딘가를 방황했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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