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그럴까

낯섦, 시기, 질투

by 이뉴

엊그제 일이다. 산책 겸 연습할 겸해서 적당히 무게를 채운 배낭을 메고 꽤 먼 거리로 걷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는 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비면 맞을만할 것 같아서 가까운 코스보다 계속해서 일부러 먼 곳으로 돌아갔다. 아파트를 나와 횡단보도를 하나 지났을 때였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쑥스러움과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하는 눈치였다. 얼른 사람들이 없는 곳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차들이 지나가는데, 가는 방향에서 멈춰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알 수 있는데, 사이드 미러와 룸미러로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굳이 멈춰 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의 큰 교회 뒤편을 지나 우리 시골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시골길에 접어들자 비가 점점 더 오기 시작했다. 가방은 젖으면 안 될 것 같아 가방만 판초우의를 씌웠다. 형광색의 빛깔이 더욱 집중시킬 것 같았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작업을 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왼쪽 편 밭에서는 한 할머니가 계셨다. 마찬가지로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하는 눈빛으로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인사도 드렸는데 말이다.


이해는 간다. 비 오는 날 그곳에 배낭을 메고 돌아다닐 사람은 소위 미친 사람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의심과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볼 것은 아닌데 말이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너무 관심이 많다. 관심이 관심으로만 끝난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그것이 도를 넘어 과도한 연민과 동정, 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교만함까지 번지기에 문제가 된다. 외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게 거의 없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완전한 시골길은 진흙 투성이가 되어 옆에 약간 높은 둑을 이용해서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슬슬 우비를 꺼내야 싶었지만, 이미 부슬비에 맞을 때로 맞은 나는 굳이 입지 않기로 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측은지심이 느껴졌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차들은 속력을 줄이고 나를 지켜보았고, 예초기 돌리는 사람, 외양간 정비하는 사람 등등 다수의 사람들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사실, 이러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웃에게 내미는 작은 관심이 서로를 지켜주고 봐주면서 나름의 안정망을 구축하고, 마을의 시스템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배타적인 것과 자기 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마음은 적어도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은 것도 사실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이 부러운 것일까. 누가 봐도 나보다 본인이 잘 살고 안정적으로 사는데, 불안하게 살기에 애써 발버둥 치는 나를 시기 질투하는 것일까.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이룰까 말까였는데, 그것마저 부러운 것일까. 퇴사를 앞둔 요즘, 인간의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그 깨달음은 깊이를 더해 간다. 인간이 어디까지 꼬이고 내려갈 수 있는 것일까. 시기와 질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 해내는 거짓과 위선, 그리고 온갖 악행들이 어디까지 일지 참으로 궁금한 나날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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