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내 마음이 있었다
소원이었던 포토 에세이가 끝났다. 이 책은 결론부터 쓰고 시작했던 이상한 시리즈였다. 카메라와 함께 했던 지난 12년의 세월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다녔던 모든 곳을 네이버 지도에 빨간 점으로 표시했다. 훌륭하고 멋진 여행가들에 비해 나의 발걸음은 한없이 부족했지만, 내 수준에 이만하면 훌륭한 것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빽빽한 충남과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를 빼고 다소 휑한 동부 지방이 아직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하지만 나의 날은 길고, 풀어내야 할 삶의 숙제들이 많으니 언젠가 구석구석 다 가볼 날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생각보다 도전 정신이 부족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라 낯선 곳을 잘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계획적이지도 않은 절대 "P"의 소유자라 즉흥적인 것은 또 남보다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니 낯선 곳에 가겠다고 객기를 부리고 보면 꼭 긴장된 채로 그 여행지를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런 상황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모든 변수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봤던 곳, 익숙한 곳을 방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이리라.
마무리하는 글은 맨 처음 썼으나, 책의 제목은 가장 마지막에 정했다. 그리고 책의 제목도 이 글의 제목과 동일하게 짓기로 마음먹었다. 적지 않은 에세이를 써댔지만, 정작 사진 에세이가 없었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인스타에 간간이 올리던 사진과 짧은 글들을 조금씩 모아 이렇게 꾸미게 되었다. 더 많은 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3개월간의 베트남 출장으로 인해, 일주일 한 편 정도밖에 올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진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자신이 없었다. 호기롭게 들고 온 사진에세이지만, 사진의 질이 너무나도 떨어졌다. 늘지 않는 실력에 딱히 호승심이 생기지 않았는데, 이제야 게으른 나 자신이 잠시 미워졌다. (사진 용량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었던 그때 거기에 내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지라, 제목을 이렇게 잡게 되었다.
건방지게도, 내가 여행한 모든 곳에는 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무표정한 얼굴과 반응 없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쁨, 슬픔, 분노, 걱정, 포기하고 싶은 마음 등 여러 가지 감정들과 각기 다른 감탄사로 마주한 모든 자연들에 대한 나의 사진은 내 마음을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들은 무용한 것들이라 말하지만,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나오는 김희성의 말처럼 나 역시 무용한 것들을 너무 좋아한다. 조용히 나지막하게 읊조려 보는 해, 달, 별 등은 나의 또 다른 마음들이 되었다.
성경에 간음하다 걸려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군중들은 예수에게 끌고 와 이 여인에 대한 심판을 요구했지만, 예수는 아무 말도 없이 땅에다 뭐라고 썼다. 성경학자들은 예수가 땅에 쓰신 글이 무엇이었을 지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지, 예수의 그 말 없는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여인이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장면을 보고 그 여자에 대한 예수의 최소한의 배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째려보고 있는 그 엄청난 혼란 속에서 예수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쳐다보지 않는 것이라니. 나는 이런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성 어거스틴은 이 장면에 대해 "M이 M을 만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비참함(Miseria)’이 ‘자비하심(Misericordia)’을 만나는 순간이라니. 얼마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순간이 나에게도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희망을 뒤로하고, 여전히 삶은 기쁘지 않다. 재미있고 행복한 일보다 괴로운 마음이 더 많다. 바로 이 전에 마무리한 “이것이 나의 마지막 아픔이기를”이라는 나의 책도 그런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그런 의미로 이 책, “그때 거기, 내 마음이 있었다”는 전작과 연결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20개의 에피소드들이 각각 일대일 대칭되어 세트로 묶이는 그런 책이다. 나에게 사진과 여행은 언제나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흔적이자 발버둥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유명한 곳보다는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골목으로. 비참함이 느껴지는 사람들 속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 속으로. (신이거나 신이 아닐지라도) ‘비참함(Miseria)’이 ‘자비하심(Misericordia)’이 만나는 곳으로 말이다.
바라건대, 이제 다소 어둡고 무거운 글과 사진들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행복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나로 변하길 기대한다. 다음은 조금 가볍고 웃을 수 있는 소재로 써내려 가봤으면 좋겠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글을 끝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릅니다. 왕복 항공권을 끊었지만, 퇴사하고 출발하는 15년 만에 이루는 저의 꿈은 한국으로의 발걸음을 늦추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과분한, 꾸준히 읽어주신 구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다녀온 뒤 재정비 후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