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 8월, 길었던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후 회사 상황은 안 좋아졌다. 같이 일했던 수많은 동료들이 못 보던 사이에 다 사라졌다. 이 큰 공장에 5개의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사람(현장직)만 남았다. 베트남에서 적잖은 돈을 벌었던 탓에, 한 동안 대출 상환에 대한 압박감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갈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출장을 다시 가고 싶었다. 여기서 버는 것보다 배 이상을 벌어오니 그동안 힘겨웠던 이자들이 생각보다 쉬이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거의 마지막인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몇 명 남지도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정치들이 오갈 것이라 확신했다.
정치 싸움이라면 나는 당연히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상대로 되었다. 결과를 통보받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베트남에서 어느 정도 결정하고 왔기 때문이다. 아쉬움이라고 하면, 수없이 많은 말도 안 되는 소문과 의미 없는 정치 싸움, 그리고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뭇 유치한 이들 속에서 버텨낸 그 시간이 아쉬웠달까. 2019년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용케 바다가 게워내어 다시 살게 된 나의 삶은 이곳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6년 하고 7년이 다 되어가는 한 여름의 끝, 흘러온 곳에서 다시 인생의 끝을 만났다. 더욱더 거세게 몰아치는 인생이라는 파도 앞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었다. 그러나 바다가 뱉어내는 거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커져가는 파도 앞에서 죽기보단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발버둥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발버둥의 첫 번째가 ‘순례길’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전 글에도 수십 번 나와 있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의 가장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다. 아니, 반드시 나의 첫 번째 발버둥이 되어야만 했다. 갓 대학에 들어간 나에게 날아와 꽂힌 ‘순례길’은 15년이 지나서야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수많은 부침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온 것은 어쩌면 내 버킷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수많은 선택에 놓였고, 할 수 있는 최대한과 최선의 선택들을 해왔다. 하지만 후회는 늘 따라왔고, 결과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 버리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억울한 일, 치사한 일, 꼿꼿한 가치관을 가진 이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수많은 이들과의 전쟁 속에서 무수히 많이 참패하였다. 그렇게 비루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의 인생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신념이 생겼다. 두 번의 죽음의 시도 끝에서 작성한 이 버킷리스트를 다 이룰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시작은 해봐야 억울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가 온 것 같았고, 과감히 티켓팅을 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회사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잘리지 않았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입지는 있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국내외적으로 좋지 않은데, 성실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겐 크나큰 이슈가 되었나 보다. 한동안 내 이야기는 회자되었고, 무수히 많은 뜬구름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한 마당에 그런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특이한 생각이 하나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너 미쳤냐’라는 반응을 보이면 그 길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심보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굳어진 마음, 그리고 코로나 때 꺾인 이후로,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여행이나 순례길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 한낱 놀러 간다고 생각할 게 볼 보듯 뻔했다. 그래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시 내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좌표평면에서, 주로 3 사분면에 위치해 있던 우울하고 불안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던 내 인생에 말이다. 나에게 남은 두 달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퇴근 후 술 한 잔에 하루를 비워내기 바빴던 나는 술도 거의 끊고 운동에 매달렸다. 누가 보기에 대단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초 체력을 늘리기 바빴다. 어쨌든 오랜 기간 걸어야 하니 체력만큼이라도 짧은 기간 준비 잘하면 늘지 않을까 싶었다. 밤 9시에 돌아와 침대의 미친 듯한 유혹을 견뎌가며 걸었고, 뛰었다. 참기 힘든 술과 배고픔은 이성을 잃을 만큼 대단한 고통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쓰레기처럼 살았는지 알려주는 반증이었다.
9월 29일. 약속했던 하루보다 일찍 퇴사를 했다. 간단히 짐만 정리하고, 대충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제주로 몸을 옮겼다. ‘순례길’과 똑같이 한 번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9일에 걸친 210km 완주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걸어본 적이 없으니 물집은 계속해서 잡혀 나갔고, 무릎이며 발목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이 경험이 ‘순례길’에서 가장 큰 덕을 보았으니 적절한 가격으로 산 것과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