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내기 위해 가는 길
10월 18일, 밤.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 처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몸이 떨리고 긴장이 되는지 밤을 꼬박 새웠다. 괜히 싸놓은 배낭을 풀었다 쌌다 반복했다. 정말 멋진 사진을 찍었던 내 목표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내 꿈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보니 그랬나 보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 공항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수도 없이 많이 온 인천 공항. 많은 이들을 픽업하면서 나도 이 공항을 문지방 닳게 다녀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던 그 공항. 이제 이 공항을 벗어나면 나는 프랑스에 도착하게 된다. 생애 첫 유럽임과 동시에, 처음인 장기간 여행. 모든 글자에 ‘첫’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설렘과 긴장과 그리고 두려움까지 붙게 된다. 그것이 주는 묘한 기분은 그때만 느낄 수 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바로 그 감정은 휘발되어 날아가니, 그 기분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
아침 10시, 수중에 돈도 있겠다, 카운터에 가서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했다. 처음이니 이게 적정한 가격인지도 몰랐다. 모르겠고, 일단 타자 생각했다. 도착 후 야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컨디션 조절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비즈니스 좌석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좋은 컨디션으로 낯선 땅에서 막힘없이 잘 갈 수 있었다.
CDG에 도착했다. 비교적 싼 가격에 예매한 야간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이동했다. 외국인들이 나에게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물어보는 기행이 벌어졌고, ‘미안하다’만 연발하며 버스만 오기를 발만 동동 굴렀다. 기대하던 버스가 왔다. 대뜸 화면에 있는 티켓을 보여주었고, 무례했음에도 기사 아저씨는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닭장 같은 45인승 버스 거의 뒷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15시간의 이동은 정말 끔찍했다. 누가 집어 채 갈까 봐 가방을 꼭 쥐고 있어야 하는 긴장감과 ‘여기는 어디여’라는 말이 눈동자에 맺혀 있는 듯한 표정으로 구글맵만 켰다 껐다 하는 얼빠진 대한민국의 청년이 합쳐져 환장할만한 조합이 되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바욘에 도착했다. 시뻘건 눈으로 강렬하게 쏟아내는 햇빛을 마주하니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혹시 내가 프랑스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바욘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한텐 강렬하게 다가왔다. 쨍한 햇빛과 유럽풍의 건물들은 유럽에 처음 온 나를 비장하게 반겨주는 것 같았다. 서둘러 지도를 켜, 바욘역을 찾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아두흐(L'Adur) 강’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강의 이름이나 저기 보이는 셍떼스쁘히 다리(Pont Saint-Esprit)보다 더욱 괜찮았던 것은 바욘의 분위기였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유럽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프랑스의 다른 곳은 솔직히 나한텐 별로였으나, 여기 바욘과 프랑스길의 출발지인 생장은 그렇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좋은 기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긴장 모드로 전환해야 했다. 바욘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배낭을 멘 사람들도 있었고, 소위 노숙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저기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속에 경보벨이 울리고 있던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근처를 뱅뱅 돌다가 조금 길이 열렸을 때, 역 안으로 들어갔다. 두 세대였나? 몇 대의 기차가 지나가고 나니 사람들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때마침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먹은 식사 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장 식당을 찾아들어가서 먹을 만한 용기는 내게 없으니 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콜라, 그리고 물 하나를 샀다. 별다른 대화 없이 첫 구매에 성공한 나는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서둘러 나왔다. 역 앞에 앉을 만한 곳을 찾아서 우걱우걱 먹었다. 그냥 먹었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배고픈 맛으로 먹었고, 두 번 다시 돈 주고는 안 살 맛이었다. 이것이 진짜 샌드위치라면, 나는 샌드위치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오후 12시 15분쯤 기차가 도착하는 플랫폼 정보가 떴다. 아직 20여분이나 남았지만 지체 없이 자리에 일어나 기차 올 곳으로 갔다. 그리고 35분에 도착해야 할 기차가 8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차 량이 몇 개 없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나 빨리 온다고?’ 하는 수많은 의구심을 품다가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외국인에게 물어봤다. 내가 유창하지 않으니, 오히려 ‘맞다’고 간단히 이야기해 주는 모습에도 깊은 감동을 하여 기차에 올랐다. (사실 몇 마디 더 하긴 했지만, 반 밖에 못 알아들었다.
기차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여기는 검표도 안 하나?’ 하는 순간, PDA 같은 것을 들고 오더니 표를 보여 달라고 했다. 이미 내 주머니에는 표 화면이 켜져 있는 채로 대기 중이었기에, 스무 살 되자마자 술 사러 가 민증부터 당당히 꺼내는 갓 성인이 된 친구들처럼 ‘딱’하고 내놓았다. 그렇게 하고 나니 좀 웃겼다. 내가 타고 있던 칸에는 대부분 순례객들이었다. 큰 레트리버도 순례를 가는 건지, 조용히 배를 깔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웃길래 쳐다보니 강아지한테 표를 요구하고 있었다! 꽤나 재미난 모습이었다.
기차는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생장에 도착했다. 집 나온 지 장장 40시간 만이다. 버스-비행기-버스-기차로 이어지는 장시간 이동은 내 평생에 처음인 경험이었다. 아주 불편한 경험이지만, 충분히 감내하고 또 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이니 불평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블로그와 수많은 유튜브 영상에 나와 있는 대로 생장에 도착해서 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같이 가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내렸기에, ‘내일은 저들과 같이 걷겠구나’하며 속으로 ‘동지...’를 외쳐보았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순례자 사무소에 도착했다. 아직 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몇 분 뒤 고대하던 문이 열렸다. 내 앞에 외국인 한 분이 먼저 들어가시고, 나는 프랑스 할아버지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헬로’인지, ‘봉쥬르’인지 모를 이상한 인사를 건네고서 자리에 앉았다. 양쪽 다 서툰 영어로 내일 있을 나폴레옹 루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11월이면 그 루트는 폐쇄되어 발칼로스 길로 우회해야 한다. 그래서 애매하게 10월 중순으로 잡았다. 나는 곧 죽어도 이 루트를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마조마했던 것은, 10월 말로 접어들면 기상에 따라 일찍 폐쇄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나폴레옹 루트를 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다만, 조금의 코스가 변경되었으니 나눠준 지도를 잘 참고하라고 하셨다. 몇 가지 정보를 적어 냈고, 드디어 15년 만에 나도 크레덴시알을 받게 되었다. 영어 못 알아듣는 낯선 이에게 정말 열심히 설명해 주신 할아버지께 연신 고개를 꾸벅인 뒤, 아주 예쁜 가리비를 하나 골라 2유로를 기부하고 가져왔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가리비 껍데기가 부적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보단, ‘나도 이제 순례자야!’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아주 효과적인 도구였다. 서둘러 가리비를 배낭에 메고 체크인 시간까지 조금 남아, 여기저기 보러 다녔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많이 본 그 다리를 지났다. 배는 고팠지만, 여전히 무서웠던 나는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주변만 빙빙 돌며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카르푸에 들러 저녁 먹을 것과 내일을 위한 준비물을 조금 샀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내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높은 산을 올라가니 짐도 많이 들고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2층에 있는 내 방에서 프랑스 할아버지가 준 안내 지도를 보며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아마 서울대 근처는 갔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떼려는 나에게 모든 것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2층 방에서 잠에 들었다. 내일을 기대하며.
* 나의 동반자인 캐논 카메라는 무게 이슈로 가지고 가지 못했다. 순례길에서의 모든 사진은 친구에게 빌린 올림푸스 EPL-2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