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 아님 주의
무척 피곤했던 나는, 아주 개운하게 잠을 잤다. 이대로 걸어도 충분할 것만 같았던 컨디션이었다. 문제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혼자인 줄 알았던 2층 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맘 놓고 잤었는데, 내가 자는 동안에 3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 사람들이 깰까 봐, 거의 두 시간을 침대에 가만히 있었다. 외국인들도 꽤나 부지런했다. 5시 30분이 되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 나간 뒤, 나도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 부부로 보이는 두 명의 외국인이 ‘Good morning!’ 인사를 건넸다. 얼떨결에 나도 인사를 건넸다. ‘부엔 까미노’까지 했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숙소 문을 조심스럽게 열면서 다음에 만나는 사람에겐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제 프랑스 할아버지가 6시에 나가면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초보자이며, 그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위기 아닌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날이 밝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서머타임 해제도 되지 않아서 해는 더욱 늦게 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시 40분, 조금 삐그덕 대는 나무로 된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왔다. 설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자그마한 랜턴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컴컴한 길을 걷는 게 무섭지 않았다. 시골에서 산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나 싶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나 혼자 이 길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두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걷는 속도로 보아하니 내가 얼마 안 가 따라잡을 것 같았다. 하지만 쫄보인 나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내 페이스보다 살짝 느리게 걸었다. 얼마 안 가 그들도 나를 의식했는지,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내 얼굴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깜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시 쉬려는 것인지, 나를 앞으로 보내려는 것인지, 잠시 멈추었다. 잠시 후 나는 그들 곁을 지나갔다. ‘아, 인사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어, ‘부엔 까미노’라고 먼저 건네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인사를 건넸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이 정도면 그래도 할만하네?’라는 건방진 생각이 들 때,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은 벅차오르고 있었다. 여명의 아름다운 색과 새벽의 차갑고 맑은 공기는 그때 그 시간에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시간을 제일 좋아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꾸 걸음을 늦춰가며 발밑을 내려다보기 바빴다. 그러다가 뒤에 따라오던 외국인 한 분과 만나게 됐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잠시 쉬는 동안 외국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산을 올라갔다. '이야, 어떻게 저렇게 빨리 가냐'하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어차피 내 걸음, 내 호흡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부러워할 할 필요도, 무리해서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다만, 대단하다고 생각만 했다.
조금 전에 했던 건방진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고생으로 바뀌었다. 몇 걸음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땀으로 온몸이 다 젖었으나 겉옷을 벗을 수도 없었다. 벗는 즉시 칼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금방 체온을 앗아갔다. 너무 더워서 잠시 벗었다가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오리손 산장을 지나 어떤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나. 다시 옷을 입는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 ROK가 적힌 옷을 입고 오르는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을 운명적으로 계속해서 만났지만, 정작 말을 걸어본 것은 8일 뒤였다. 알고 보니 대학교 후배였다.) 순식간에 나를 따라붙더니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나폴레옹 욕부터 오마이갓까지, 일단 뱉을 수 있는 말들을 뱉어보았다. 정말로 큰 욕이 나올 뻔했는데, 푸드트럭 지점이었다. 그것만 기대하고 왔는데, 그날은 없었다! 심지어 날씨도 엄청 좋았는데 말이다! 여기서부터 비상이 걸렸다. 가지고 온 물이 거의 다 떨어졌다. ‘와’와 ‘헉’ 사이를 오가며 마셔댄 물은 이제 배낭에 매달린 작은 수통이 전부였다. 물 마실 수 있는 시설이 나오려면 많이 가야 하는데 말이다.
어쩌겠나. 헉헉대며 올라갈 수밖에. 그 사이 많은 이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한 말이 ‘How are you?’였다. 좋든지 싫든지 둘 중 하나의 대답도 외치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어 보였을까....
‘여기가 끝이겠거니’하면 오르막이 또 나왔다. 머리 위에는 독수리인지, 매였는지 모르는 몇 마리의 새들이 창공을 활공하고 있었다. ‘설마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내 머리 위를 아주 멋지게 비행하고 있었다. 풍경은 정말이지 지금껏 다닌 모든 여행지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항상 비를 몰고 다니는 나에게 이런 행운이 따라왔는지, 시작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와 반대로 나의 몸 상태는 풍경에 정확하게 반대로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포장도로는 이제 끝났다. 돌로 쌓은 십자가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외국인 남자를 만났다. ‘내가 목말라 죽는다면 이 자리가 될 것이다’ 할 때, 참 좋은 사람을 만났다. 시답지 않지만, 물 구걸을 했다. 1L짜리 생수병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보고 예의고 뭐고 따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구걸에 흔쾌히 콸콸 쏟아주었다. 그 덕분에, 그때부터 시작인 마지막 오르막 코스를 무난히 잘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물 마실 수 있는 곳을 만났고, 그 사람은 여기에 물 있다고 빨리 오라고 저기 건너편에서 외쳐주었다. “오, 주여. 이것이 맞습니까”를 외치며 올라온 끝에 나는 마침내 모든 언덕을 넘었다.
물 마시는 데를 기점으로 능선을 따라 걷다가 곧 내리막길이 나왔다. 오르막만큼 끝도 없는 내리막길 말이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오르막을 오를 땐 내리막 좀 나오라고 외치고, 내리막만 나오니 나는 오르막이 좋다고 말했다. 비포장 언덕길부터 같이 걸어오던 프랑스 마담은 내리막을 보며 “나는 여기가 끝인 것 같아. 먼저 가”라며, 농담을 던졌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같이 천천히 가보자고 했는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저 뒤에서 쉬고 계셨다. 의식하고 계셨는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한두 시간 같이 걸은 것 밖에 없는데, 금방 전우애가 생겼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오늘 숙소에서 다 같이 만나게 되니 부지런히 가면 된다.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를 4km 남겼을까. 무릎이 아파서 잠시 쉬고 있었다. 아까부터 뒤에 따라오던 외국인이었다. 쉴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 쉬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파하는 표정 때문이었는지 대뜸 ‘괜찮냐’고 물었다. 30분 정도였나. 도미닉이라는 친구와 같이 걸었다. 그 친구는 굉장히 걸음이 빨랐는데, 나한테 조금 맞춰주었다. 갈림길에서 ‘먼저 가’라고 했다. 알겠다고 잘 오라고 답을 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목적지가 눈앞에 있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우여곡절 끝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친절하신 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받은 침대를 찾았다. 이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있었다. 7시간 20여분이나 걸려 도착하고 나니 뭔가 깊은 곳에서부터 북받치는 기분이 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가 여기를 어떻게 왔는데, 이런 힘듦도 못 견디겠는가’하는 오기로 넘었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무사히 순례길 1일 차를 잘 넘겼다.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이 길, 그래서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왜 찾게 되는지를 단 하루 만에 느낄 수 있었다. 이제 30일 남은 나의 순례길에 대해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