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어려워

인생이나 걷는 거나 내리막은 싫다

by 이뉴

어김없이 새벽 4시. 눈이 또 떠졌다. 2층 침대인 나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었다. 1시간을 30분 정도 버티고 난 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젠장, 이미 1층 사람들도 깬듯했다. 여기서 정리할 순 없으니 침낭을 보따리 삼아 잡동사니를 집어넣고, 어제 싸둔 배낭을 메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막, 봉사자분들도 각 시설의 문을 열고 계셨다. 1일 차 신입 순례자인 나의 폭풍 같은 질문을 기꺼이 받아주신 어제의 한 봉사자분께서 먼저 인사를 해주셨다. 나도 인사를 건넸다. 몇몇 사람들도 각자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었다. 식당에서 짐을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신발까지 신으면서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나가는 길에 쿠키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6시,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는 없었고, 대신 칠흑 같은 숲 속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목적지는 수비리(Zubiri). 수비리까지 오르락 내리락이 심해서 순례길 초반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구간이었다. 내리막도 심하여 건강한 무릎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구간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했는데, 친절한 챗GPT는 TMI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그 설명을 들으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막상 발걸음을 옮겨보니 딱 느낌이 왔다. 나는 확실히 새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 와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새벽의 촥 깔린 차가운 기운과 상쾌한 공기,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벽 냄새는 계속해서 나를 6시에 출발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날씨가 좋으면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걸을 수 있는 행운까지 더해졌다. 물론, 해가 뜨기 전에 지나는 마을과 아름다운 길들을 즐길 수 없다는 단점이 명확했다. 도로를 지나는 구간도 있어서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배낭에 야광커버를 씌우고 다녔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물도 잘 챙겨 다녔기 때문에 안전히 잘 끝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벽 6시에 출발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수비리는 똑똑한 챗GPT 선생의 말대로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특히, 거의 마지막 내리막길에서 정말로 무릎이 나가버렸다. 오히려 피레네 산맥 오르는 게 더 쉬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힘들었다. 절뚝이며 공립 알베르게 숙소 여는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고, 일단 씻고 누웠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쿠키 한 개 먹은 게 전부였다. 어제부터 그랬는데, 입맛이 별로 없었다.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주문하기가 쑥스러워서 그런 것인지 그 중간 어딘가에서 합의점을 본 나는 거의 굶다시피 했다. 그래서 허기가 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간신히 숙소에서 나왔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걸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배고픔도 참을 수 없어서 근처 바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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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와서 처음 오는 식당이라면 믿어지시려나 모르겠다. 나도 영어를 못하고 식당 사장님도 영어를 잘 못하셔서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먹었다. 어떻게든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시작하면 되는데 ‘나는 왜 항상 이렇게 재고 있는 것일까’하는 마음은 음식 나오기 전까지만 들었다. 맥주와 간단한 음식은 고민들마저 쏙 들어가게 했다. 결국 “한 번 더”를 시전 하며 배불리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여전히 무릎이 아파서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그리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무릎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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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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