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눈물이 난 이유

나를 고쳐가는 중

by 이뉴

새벽 1시. 전날보다 더욱 눈이 일찍 떠졌다. 삐걱대는 침대에게 ‘제발 좀 조용히 해’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5시까지 버텼다. 다시 침낭을 보따리 삼아 주섬주섬 챙겨서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출발 전 짐 싸는 의식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왜냐하면 시작한 지 3일 만에 비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선 진통제를 하나 먹었다. 무릎이 여전히 아팠기 때문이다. 야속하게도 출발 준비는 금방 되었지만, 쉽사리 나갈 수가 없었다. 비가 조금이라도 그치길 바랐다.


6시가 되자, 귀신같이 비가 그쳤다. 얼른 문을 열고 나갔다. 5분 정도 갔을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리도 건너기 전에 담벼락에 서서 판초우의를 다시 꺼내 뒤집어썼다. 오른쪽은 무릎이, 왼쪽은 엄지발톱이 빠질 것 같은 통증에 불안감이 커졌다. 팜플로나(Pamplona)까지 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빗속을 뚫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날 밝을 때 나올 걸’하는 후회가 잠시 밀려왔다. 31일의 여정 중에서 아침에 나온 것을 후회한 처음이나 마지막 날이었다. 그만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랜턴에 빗물이라도 들어갈까 봐 소매 깊숙이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비와 어둠은 걷는 데에 상당한 방해가 되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핸드폰으로 길도 확인 못했다. 까미노 표식을 잃어버릴까 봐 빗물이 들어가더라도 눈을 부릅떴다. 진통제를 먹고 나온 게 신의 한 수였다. '일단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비와 어둠을 통과했다. 9시가 되어 해가 뜰 때 시간에도 날이 너무 좋지 않아 하늘은 온통 잿빛뿐이었다. 다행히도 비가 좀 사그라들었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두운 빗속을 뚫고 지나온 게 서러웠을까. 지금 내 처지가 처량했던 것일까. 아니면 얼렁뚱땅 순례길에 올라 특별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보낸 지난 이틀 간의 감정이 지금 와서 터졌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꿈을 이룬 게 기뻤던 것일까. 아니면 내면 깊은 곳에서 숨어 있는 불안과 슬픔 때문이었을까. 이유 모를, 아니 찾고 싶지 않은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울면서 걸었다. 다행히 앞뒤로 아무도 없었기에 들키진 않았다. 들켰어도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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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에 거의 다 도착했다. 귀신같이 비가 그쳤다. 잠시 배낭을 내려두고 판초우의를 털었다. 그리고 약간의 물기를 말리기 위해 빨래집게로 고정했다. 다시 배낭을 고쳐 메고 얼마 남지 않은 팜플로나까지 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했다. 비 온 뒤의 도로와 나무, 이름 모를 들풀과 강, 낙엽의 색은 차분했다. 기분 나쁜 소음 없는 자연의 소리가 어느덧 좌우 귓가에 모였다. 팜플로나가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나왔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별 탈 없이 오늘도 잘 도착했구나라고.


그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울었던 것일까. 얼마나 울었길래, 마음이 차분해졌을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짓누르던 근심과 걱정이 작은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말 못 할 어려움과 깊은 상처들이 왜 마음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일까. 꿈을 이루었다는 기쁨과 환희, 여전히 비참하고 불안한 이 두 세계를 동시에 느길 수 있는 것일까. 눈물은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드러나게 했고, 상처와 아픔들을 씻겨 내린 좋은 도구가 되었다. 어느 지점에서 폭발이 된 것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으나, 결국 이 순례길이라는 게 트리거가 되어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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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전에 순례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대도시인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우연히 1등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 다 2층에서 잤는데, 이날은 1층에 배정받았다. 유쾌한 체크인을 마친 뒤, 순례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들을 착착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아침에 먹은 진통제 효과가 꽤나 좋았는지 어제보다 훨씬 괜찮았다. 참 다행이었다. 이때를 이용해서 대성당과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줄곧 남들의 여행기에서만 보던 유럽의 성당을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했다. 없던 믿음도 생길 것 같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울면서 걸었던 주제에 유럽의 문화 앞에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든 것을 담기 바빴다.


성당을 뒤로한 채, 광장으로 향했다. 군중 속에서 시끄러운 속을 조금 달래 보려 했다. 분주해 보이기도, 여유 있어 보이기도 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나 자신과 많이 비교되었다. 순례길까지 왔으면서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돌아갈 다리마저 끊고 전투에 나간 한 명의 장수처럼 비장해졌을까. 이 길에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고 가야 하는 것일까. 못 얻고 갈 수도 있지 않나? 자유롭고 낭만적인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해볼 수 있는 고민과 생각들을 충분히 해보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록 울다가 끝나더라도. 비록, 아무것도 얻고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팜플로나의 저녁은 나를 깊은 사색의 장으로 이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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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