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물러나 듯

죽음에 대한 나의 작은 고찰

by 이뉴

동생이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온 날이었다.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달려갔다. 어찌나 밟아댔는지 인천공항까지 1시간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빨리 간다고 해서 동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정도로 마음이 급했나 보다. 어쭙잖은 일로는 통 연락을 하지 않던 놈이 연락을 해왔고, 그것은 역시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을까. 도착장 입구에서 절뚝이며 걸어오는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정신에 휠체어는 어떻게 챙겨갔는지, 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휠체어부터 동생 앞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완강하게 거부했다. 욕이 입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어쩌겠나. 아파서 들어온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으니. 나는 형인데도 이렇게 맨날 졌다.


삼성서울병원으로 달렸다. 올림픽대로였는지, 강변북로였는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시골촌놈은 죽어라 밟았다. 자동차 옵션값 뽑았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을 던져가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응급실에 도착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병원은 삼엄했다. 1월 추위가 기승을 부릴 시기, 나는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진상을 부렸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SNS에 나온 진상들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지 말 걸 그랬나 보다. 머리에 피가 나고 의식이 소실된 환자들이 내 옆을 지나쳤고, 머리로는 이해하는 그 위급함은 지금 내 앞에 어떻게 들이대도 소용없을 지경이었다. 단순히 코로나 검사 하나만으로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정신을 차렸을 땐, 당연히 이해가 됐다.


내가 어릴 적 동생은 많이 아팠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고, 그것을 뛰어넘는 초인이 되어 지금 이 나이까지 그 삶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날도 정말 위험했다. MRI의 판독이 수차례 지속되었다. ‘알 수 없다’는 말만 벌써 세 번을 들었다. 절뚝이는 다리라도 온전히 남아 있기를 소망하는 건 나의 과대망상이었을까. 나는 복도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신이 마지막 온정을 베풀었는지, ‘알 수 없음’의 판독 결과도 끝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때 내가 내쉰 한숨엔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숨에서나 나올 법한 내장의 썩은 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약간의 희망이 우리에게 비춰졌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생의 끝자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늘 그래왔듯, 이런 삶의 위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이라는 동굴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삶의 위기가 있을 때 꼭 책들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솔직히, 내 주변엔 물어볼 어른이 많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집에 있던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깡그리 긁어모으니 10권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내 앞에 놓여진 이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건 다 별로여도 이런 사정 하나쯤은 봐주는 회사 덕분에 열흘 넘게 병원에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동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10권이 넘는 책을 읽어댔다. (추가로 구매를 했다.) 죽음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때가 벌써 4년이 지났다. 동생은 여전히 삶과 죽음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무심코 전화 오는 응급실의 전화는 가슴을 철렁이다 못해, 삶을 뒤 흔들어 놓는다. 의료진의 전화를 받으며 그에 대해 물어볼 때 몰라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라고 오른손을 들어 내 머리통을 내려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알아서 잘하겠다는 동생의 의견 역시 안 들어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물론, 마음에는 안 들지만 말이다.


올해 턱밑까지 차오른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올라왔다. 그래서 더욱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굉장히 쿨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완 다르게 타인의 죽음에 경종이라는 차이를 두고 있었다. 4년 전 나는 죽음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서 죽음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부진 결심과는 다르게 나는 여전히 죽음에 대해 잘 모르겠다. 특히, 나의 죽음이 아닌 적어도 타인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경험이 생각보다 많이 있는 나에게도 여전히 부담스럽고 힘든 게 죽음이다.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차피 다시 만날 것이라는 것은 명백히 알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게 이 죽음이라는 사실. 나는 오늘도 이 사실 앞에 겸손해진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으로 나는 오늘도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도망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희망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