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에세이 쓰기를 시작합니다
7살 남자아이 키우고 있는 조두리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보고 들으면 그것에 대한 내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글로 써보면 어떨까 싶어 에세이 쓰기 모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길문고 상주작가 배지영 작가님과 함께하는 에세이 쓰기 5기 첫번째 모임에 나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 약간의 착오로 단톡방에는 늦게 합류하게 됐지만, 오프라인 모임에까지 늦고 싶지 않아 일찌감치 움직인 덕분이었다.
한길문고 대표님과 작가님께서 열심히 바닥을 닦고 테이블을 옮겨 만들어주신 자리에 앉아있으니 한 자리, 두 자리 메워지기 시작했다. 마무리해야하는 일이 늦어졌다는 선생님 두 명을 제외하고 우리는 인사를 시작했다.
작가님은 먼저 자기소개와 에세이 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앞사람이 소개하는 동안 속으로 ‘현재 내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수식어는 뭘까‘ 고민했다. 하고 있는 일? 사람들이 크게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다. 직업은 패스. 나이?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다. 나이도 패스. 그럼 현재의 관심사는 어떨까. 조금 소심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들을 멋진 인간으로 키우기와 독서 정도로 추려진다. 여기는 에세이 모임이다. 거기다 누가 봐도 나는 막내라인. 독서라는 단어로 나를 소개하기엔 내 독서경력이 너무 하찮다. 가족소개로 시작하는 게 아무래도 무난해보인다.
다음으로는 이 모임에 나오게 된 계기인데, 이건 너무나 분명하다. 최근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피소드를 들으면 관련된 내 경험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 공감하는 마음과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는다. 나는 욕구 해소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깨달음이 처음부터 글쓰기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누군가와 대화하듯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쌓아두다가 잊어버렸다. 다 내뱉지 못해 아쉬워만 할 뿐,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건드려볼 영역이 아니었다. 난 태생부터 이과체질이라 굳게 믿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그 믿음을 확신시켜주듯 이해하기 힘든 정보나 비유를 어려운 단어들로 써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바꾸게 된 숨겨진 계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환상의 동네서점>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배지영 작가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겨울이 시작될 때였다. 퇴근길에 한길문고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베스트셀러 코너 앞 쪽 동그란 테이블에 왕창 쌓여있는 어떤 책을 발견했다. ‘한길문고에서 강력추천 합니다’라는 듯이 보였다. 책 뒤로는 한길문고 상주작가 배지영 작가와 책 소개가 적힌 작은 배너가 붙어있었다. 내 관심을 끈 건 ‘상주작가’라는 단어였다. 친근한 한길문고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서점에 상주하는 작가가 있고 그 작가가 이 책을 썼다고? 대충 뒤적거려 보다가 한 권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갔다.
“저 이것도 살게요. 이 책 다읽고 가져오면 배지영 작가님께 사인받을 수 있나요?”
“작가님 있을 때 오면 사인해줄 거예요~”
작가강연회에 가지 않고도 아무때나 서점에 와서 작가사인을 받을 수 있다니! 그렇다. 사실 저자사인본을 가질 생각에 신나서 냅다 사버린 거였다. 먼저 사뒀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환상의 동네서점>을 읽기 시작했다. 빨리 읽어서 다음 주라도 당장 사인받으러 갈 계획이었다.
환상의 동네서점의 주인공은 내가 좋아하는 도시 군산에 살고 있으면서 소박하지만 빛나는 마음속의 작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장소, 친근한 사람들, 공감되는 이야기에 읽는 내내 설렜고 마음 속 어딘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멋져 보였고 나도 그들처럼 멋진 사람이고 싶었다. 거기다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글은 지금까지 읽던 어려운 글들과 달랐다. 자연스럽게 장면이 그려지게 만드는, 공감의 웃음을 자아내는 글이었다. 그 때 나도 내 일상, 숨겨두었던 생각들을 글로 써내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사인 꼭 받아야지! 실제로 만나면 너무 친근하게 말 걸어주실 것 같다.’ 그렇게 또 나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게으름을 과소평가해버렸다. 습관처럼 책을 책꽂이에 꽂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기회를 미루기 시작했다. 점점 저자사인본에 대한 열정은 식어갔고, 용기도 줄어갔다.
하지만 배지영 작가님만큼은 관심작가로 내 머릿속에 남겨졌다. 관심이란 씨앗이 심어졌다는 건 곧 궁금함의 싹이 돋을 예정이라는 뜻이다. 검색 중 ‘이 저자의 다른 책’에서 ‘소년의 레시피’를 발견했다.
“야자 대신 집에 가서 밥하고 싶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저녁밥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들 있는데?! 아직 7살이긴 하지만. 나도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데?! 외식하는 걸 조금 더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 책 무조건 읽어야해. 역시나 재미있었다. 에세이가 가지는 공감의 힘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소중한 일상의 경험을 더 이상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자기소개로 주어진 30초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 금방 흥분하고 금방 싫증내는 사람이라는 걸. 글쓰겠다고 새로 산 블루투스 키보드가 방 한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목표는 한가지다. 이 설렘의 크기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끝까지 잘 유지할 것. 모범생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기대하자면, 나만의 경험이나 사유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힘을 가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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