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을 만나다

우리의 인연, '심'이라는 이름의 진짜 이야기

by AJ

게임을 하다가 언니를 만났다.

알게 된 지 3년이 훌쩍 지나간 어느날

갑자기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만날래?"


지금생각해도 참 갑작스러운 약속이었다.

어떻게 보면 꽤 무모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같이 놀고 연락하는 사이라

한 번쯤은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언니가 "내가 갈게"라며 찾아온다고 했을 때,

두근거림 반, 불안한 마음 반.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기대감이 제일 컸다.


약속당일, 언니를 마중하러 나섰다.

낯선 지역에 혼자 있을 언니가 걱정돼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삐 걸음을 옮기다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언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싶을 만큼,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봤다.


작고 요정 같은 사람.


'앞뒤 다른 사람이면 어쩌지?'

괜히 걱정했던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게임 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였다.


나중에 언니는 그날 첫만남을 이렇게 말했다.


"눈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어."


1박 2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일이라곤 잠드는 시간 빼고 계속 재잘거린 것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얘기할 거리가 끊기지 않지?"

웃으면서 그런 말도 했다.


첫 만남 이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통하는 구석이 많았고 연락이 잦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쾌활하고 시원한 모습의 언니를 좋아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발이 동동거렸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이번에는 내가 언니를 만나러 갔다.

1박 2일 일정이었다.

시외버스를 예매하고 시간맞춰 도착한 버스터미널에는

이미 언니와 형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주로 게임하는 언니 옆에서

얘기를 들으며 한마디씩 거들던 형부는

처음 보는데도 어색하지 않게 대해줘서

'우리 외삼촌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살갑고 사람 좋은 분이었다.


우린 집 앞 카페 한켠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커피와 마들렌을 앞에 둔채

그사이 쌓인 얘깃거리를 조잘거리기 바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던 중,

언니가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사실.. 북한사람이야"


슬쩍 눈치 보며 분위기를 살피는 그 눈빛이

왜 그렇게 짠하게 느껴졌는지

아마 언니는,

'내가 생각한 사람과 다를지도 몰라'

'혹시 불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한 것 같았다.


"진짜??! 전혀 몰랐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내 솔직한 반응이었다.

그냥 그렇구나,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혹시라도 언니가 내 마음을 오해할까 봐

말을 고르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니는 가끔 사람들이 미묘한 말투 차이를 캐치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고 했다.


내 지인이 북한사람이라니,

갑자기 궁금증이 마구마구 밀려왔지만

나는 쉽게 묻지 못했다.


혹시라도 너무 가볍게 들릴까 봐.

실례가 되지 않을까 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치 오래 준비해 둔 이야기처럼,

술술 막힘없이.


미디어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북한의 삶은

언니의 입을 거치자 훨씬 차갑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폭력과 이별, 그리고 탈출까지

언니의 말 한마디, 한숨 하나, 그렁거리는 눈망울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어렸지만 담대한 언니의 성격은 이야기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듣다 보면 웃음 나다가도, 어느 순간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영화 한 편이

조용히 내 앞에서 끝난 느낌이었다.


언니의 북한에서의 일생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고, 또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하기로 했다.


이건 ‘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한 여성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실화이며,

한 어린아이의 일생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실제 기억을 바탕으로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