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심’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by AJ

1. 가족들은 나를 '심'이라고 불렀다.


이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 북한에서 태어났을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주 어릴 때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일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9살 즈음의 기억이다.


그시절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깊게 남은 강렬한 일상 몇 가지는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가족은 네명이서 누우면 꽉차는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렸다.

한껏 취해 고성을 지르고, 곧이어 손이 올라가면

나는 그저 동생을 끌어안고 쥐구멍만 한 방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고성과 울음소리, 그 뒤를 잇는 둔탁한 타격음.

그 소리가 들릴때마다 더 구석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엄마는 맞으면서도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엄마를 도와줄 수도, 대신 맞아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떻게 그 시절을 참고 견디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아직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2. 아빠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우리집은 늘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그런 날이면 어른들 웃음소리와 술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날도 아빠의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던 날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머리에 안테나가 꽃힌 것처럼

이상한 감각이 곤두섰다.


늘 위험한 기운이 올 때면

나는 귀신같이, 본능적으로 알아채곤 했다.


숨을 죽이고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친구 한 명이 구석에 놓인 보자기를

무엇이 들었나 확인하듯 힐끔거리고 있었다.


낮에 엄마가

옥수수가루로 반죽해 만든 국수를

담은 보자기였다.


그 사람이

옥수수국수를 몰래 빼돌리려는 걸 눈치챈 순간

나는 휙 고개를 돌려

엄마에게 달려가

다리를 동동거리며 말했다.


"엄마, 엄마!

저 사람이 자꾸 국수 보자기에 손 넣어!

국수 빼가려고 하는것같아"


엄마는 잠깐 그쪽을 보더니 말했다.


"심이 저 가서 서 있어라"


말이 끝나자마자

보자기앞으로 튀어나가 망을 봤다.

그날 국수를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3. 하루는 옆집에 살던

한살많은 오빠와 놀던 날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모여

함께 뛰어다니고

모래와 흙을 뒤집어 쓰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옆집오빠와 말다툼이 생겼고

금세 싸움으로 번졌다.


분개하던 옆집 오빠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고

바닥에 깨져있던 유리조각을 손에 들었다.


”힉!”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집어드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놀라 기겁했고

동시에 옆집오빠의 팔이 앞으로 뻗어졌다.


빛에 반사돼 번쩍거리던 유리조각이

내 왼쪽 눈 밑을 스쳤다.


주변이 조용했다.

마치 모두가 ‘얼음땡’ 놀이를 하는것처럼

숨소리 하나 없이 얼어붙었다.


곧이어 뜨거운것이 내 눈밑으로 흘러내려

턱 아래로 ‘톡’ 하고 떨어졌다.


아이들의 비명이 귓가를 울렸다.

시뻘건 것이 얼굴을 타고 내 손 위로

후두두두 흘러내리고 있었다.


멍하니

피뭍은 손을 내려다보다가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심아!!!!!”


저녁밥을 짓고 있던 엄마가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밖으로 나왔다가

두눈이 커진채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과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주던 엄마는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옆집대문을 걷어차며 언성을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한 아빠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불같이 달려 나갔고,

동네는 한 번 더 시끄러워졌다.


몰려든 동네사람들 앞에서

옆집오빠는 잘못했다며 무릎꿇은채

울며불며 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과 함께

‘무서워’라는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자리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를 뒤로한 채

뒤돌아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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