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몰랐지만, 세상을 먼저 배워야 했던 아이
1.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유치원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지만
부모님은 보내지 않았다.
왜 보내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땐 그냥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글자를 읽지도,
내 이름 석 자를 쓰지도 못했다.
엄마와 아빠가 출근하면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아직 어린 동생은 몸이 약해 자주 아팠고,
하루 종일 그 옆을 지켜야 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엄마에게 굳이 묻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때 글을 배우지 못한 아쉬움과 작은 원망이 남아 있다.
2. 이후에는 친할머니 댁을 오가며 살았다.
할머니의 집은 시골이었고
큰아빠, 아빠, 고모, 작은 고모, 다섯째 삼촌, 여섯째 막내삼촌까지
모두 한집에 살았다.
그러다 하나둘 결혼해 나가고
남은 건 우리 가족과 다섯째 삼촌, 여섯째 삼촌뿐이었다.
다섯째 삼촌은 늘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입만 열면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며
내 속을 갉아먹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그를 못난이 삼촌이라 불렀다.
반면 할머니와 막내삼촌은 나를 유난히 예뻐했다.
"우리 심이"
"우리 아가 심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부터 달랐다.
같은 집, 같은 아이였지만
누군가는 식충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아가라 불렀다.
그 차이를
어린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막내삼촌은 종종 부모님께
"왜 심이는 글을 안 가르치냐"고 뭐라 하곤 했다.
가끔은 삼촌이 글을 알려줬는데
모음과 자음을 직접 적은 공책을 건네주며
"이거 따라 쓰면서 공부해 보자"
그렇게 글을 가르쳐 줬다.
하지만 나는 금세 공책을 덮었다.
사촌 오빠랑 숨바꼭질하고
잠자리를 잡으러 가고
집 뒤에 있는 강에 나가 수영하는 게
훨씬 더 재밌었으니까.
그땐 몰랐다.
글자를 배우지 못한다는 게
세상을 모르는 일이라는 걸.
3.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공부는 늘 뒷전이었고 놀러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흐어어어엉!!!"
동네 떠나가라 엉엉 우는 소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오는 내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네 강아지에게 손을 물린 것이다.
온 집안 식구들이 놀라 그 집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어떡하냐…." 하시며 울먹거리셨고
다친 뒤로는 밥상에 귀한 쌀밥과 된장국이 올라왔다.
북한에서는 쌀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건 정말 특별한 음식이었다.
못난이 삼촌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먹을 것만 축내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아예 대접까지 받네."
그 말이 들렸지만
모르는 척 밥그릇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괜히 숟가락을 크게 움직여
밥을 한 술 더 퍼먹었다.
그러자 삼촌은 혀를 찼다.
나중에 친구 집에서 사과의 의미로
귀한 물고기 한 마리를 보내왔다.
할머니는 그걸로 탕을 끓여주며 말씀하셨다.
"심이, 네가 다 먹어라."
'진짜 나 혼자 다 먹어도 되나?'
그 말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늘 강냉이밥(옥수수로 만든 밥)을 먹었기에
쌀밥도, 생선탕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느껴졌다.
못난이 삼촌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국물까지 싹 긁어 먹었다.
어릴 때라 그저 좋았다.
할머니와 막내삼촌이 곁에 있을 때를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마음은 참 편하고 따뜻했다.
그 시절은 우리가 잘 사는 편이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절.
그래서일까, 그때의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
나를 미워하던 못난이 삼촌이 결혼을 했고
내 인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