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밥보다 먼저였던 시간
못난이 삼촌네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삼촌엄마(작은엄마)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삼촌엄마의 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점점 더 불러왔고
어느덧 막달이 되어 아이를 낳을 날이 가까워졌다.
북한에도 병원이 있지만
큰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아니면 잘 가지 않았다.
아기를 낳는 일도 대부분 집에서 이뤄졌다.
어느 날, 엄마가 삼촌엄마에게 말했다.
"애를 쉽게 낳으려면 움직여야 해."
그러면서 물을 길어오라고 시켰다.
물 길어 가는 곳은 옆집 우물.
왕복으로 10분 남짓한 거리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무렵이라
햇살은 따가웠지만
금세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양동이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던
삼촌엄마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뒤뚱뒤뚱
커다란 배를 부여잡고 오가며
"아고고.....휴우.."
숨을 고르던 모습.
물을 길어 돌아오는 길에는
중간에서 한 번 멈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하루하루가
삼촌엄마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되어
미움으로 자라났다는 걸
그 무렵,
부모님은 일을 나가 계실 때가 많았다.
일을 나가면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고
나와 동생은
친할머니 집과 외할머니집을
번갈아 다니며 지냈다.
어른들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자
집 안에서
목소리가 커진 사람이 있었다.
집 안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고
그 변화는 가장 먼저
나에게 닿았다.
삼촌엄마는
나를 노골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못난이 삼촌에게 눈총받던 나는
이제 삼촌엄마의 미움까지 함께 받아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엄마가 품고 있던 아이가 태어났다.
본가에는 친할머니와 못난이 삼촌,
삼촌엄마, 갓난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고
본집 옆 작은 창고가
나와 동생의 보금자리였다.
어느 날부터 친할머니네 집에 머무를 때면,
배가 고픈 날이 늘었다.
삼촌엄마는 자기 가족 밥만 챙겼고,
나와 동생에게는 밥을 주지 않았다.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삼촌엄마가 나를 싫어하는구나.'
우리가 그렇게까지 미웠던 걸까.
며칠째 그렇게 굶다 보니,
문틈 사이로 밥 짓는 냄새가 흘러만나와도
배가 요동쳤다.
평소처럼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할머니가 무언가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밥알 몇 개만 둥둥 떠 있는 누룽지물이었다.
우리는 그걸 마시며 배를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촌엄마 눈치를 보느라
그것조차 몰래 챙겨 오셨던 걸지도 모른다.
맑은 누룽지탕을
허겁지겁 입으로 밀어 넣는데,
눈앞에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이리 배가 고픈데
어린 동생은 또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 투박한 손길
그렁그렁 맑은 작은 눈동자
모든 게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 안쪽이 꽉 차올랐다.
웃으려 했지만,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날의 배고픔은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그건 단순히
먹을 게 없어 생긴 배고픔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원망이,
어른의 관용보다 앞섰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그날의 나와 동생은 누군가의 미움 때문에
밥 한 숟가락조차 얻지 못했다.
삼촌엄마는 자기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다른 아이에게는
그렇게까지 냉정할 수 있었다.
적어도
밥 한끼 는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응어리진마음을 용서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지만
그날의 배고픔과 서러움은
'내가 미움받았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날의 그 마음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