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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Oct 12. 2024

9화. 데모와 구경꾼

올해 초에 의료대란 문제가 국민에게 화두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대립되면서 의료대란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데모와 진료거부를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태를 보고 있으니 대학교 신입생 때가 생각났다.


1988년 3월의 H대학교 분교는 신학기가 되어 학과나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 MT 등의 행사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학우들의 마음은 들떴다. 캠퍼스룰 거닐다 보면 때때로 잔디밭에서 신문지를 깔아놓고 술과 안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학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캠퍼스의 평온한 모습과 다르게 캠퍼스에는 불안한 모습들이 있었다. 학교의 모교수가 재단과 연계되어 있어 부정채용이 의심된다는 등 학원비리와 민주화운동을 이슈 삼는 대자보들이 학교 게시판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학생회관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가끔씩 들리는 운동권 학생들의 구호와 민중가요 소리. 사회운동에 관심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외침을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중학생 때부터 데모하는 곳을 지나칠 때면 단골처럼 들렸던 노래였다. 


끔씩 캠퍼스에서 운동권 학우들이 데모를 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L학우가 데모하는 것을 구경 가자고 말했다.


"정문 근처에서 데모하고 있는데 구경 갈래?"


그는 학교 정문 근처에서 학우들이 데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남학우들 뿐만 아니라 여학우들도 몇 명이 앞에 나와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데모하는 분위기는 어떨까 학우들은 얼마나 많을까 무슨 구호를 외치고 있을까 궁금했다. 강의실, 도서관, 학생식당만 다닐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학우들의 행동을 보고 싶었다.


"그래. 구경하러 같이 가자"


그는 정문에서 여학우들 몇 명이 나란히 서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학우들은 무슨 구호를 외칠까 궁금했다. 데모하는 장소를 지나갈 때면 익히 들리던 '반전반핵 양키고홈(反戰反核 yankee go home)'과 같은 구호를 외쳐댈까 궁금했다. 를 따라서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겁이 많아서 데모하는 학우들로부터 좀 떨어져 뒤편에서 구경했다. 정문 근처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데모하는 학우들이 많지 않았다.


"뛰어"


그때였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소리쳤다. 갑자기 옆에 있던 학우들이 혼비백산되어 뛰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전경(전투경찰)들이 쫓아오고 있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들도 데모하는 학생들로 인식해 잡으러 달려오는 것이었다.


속력으로 뛰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골목보이는 커브길이 나타났다. 커브를 돌아 골목으 들어섰다. 뒤틀 돌아보니 더 이상 전경들이 쫓아오지 않았다.


"조심해야겠는걸. 전경에게 잡히면 경찰서에 가게 될지도 몰라"


L학우가 말했다. 언제던가 형이 대학로에 친구 만나러 갔다가 데모 무리에 휩쓸려 경찰서에서 조사받았었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운동권 학우들은 열심히 외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침으로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 같은 데모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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