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말실수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by 이닻


번역이라뇨, 최악입니다

한국어는 번역해 봤자 한국어고

입술이 부르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녜요

나는 영어를 했다고 생각하면서 말합니다

거짓말 못 하는 병에 걸린 영화 주인공처럼

참 그걸 말하려던 게 아니라, 아니, 그러니까,

실은 그걸 말하려던 게 맞는데, 그걸 정말로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니까요•••

해명은 덧바를수록 덧나 못나집니다

혀를 꽁꽁 붙들어맨다고 될 일이 아녜요

모든 더러운 것은 마음으로부터

내가 진실된 말로 당신을 짓이겼나요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요

혀는 혀의 기능을 할 뿐입니다

카트리지 벌써 닳았다고 혼낸다면 폭력이겠죠

흑백의 마음으로 칼라의 언어를 출력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나의 불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중언어구사자들이 참 부러웠어요

두 개의 언어 회로가 각각 숨구멍처럼 뚫려서

매번 선별하고 변환하고 수정하는

이 지난하고 소모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까


-Are you thinking in English or Korean?

교수님은 묻고

-생각하고 마음하는 대로 말에 옮기고 싶습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었는데.


빨간 불처럼 깜박, 깜박거리는 거울 속의 흰자위

잉크가 없어 그 말은 차마 옅었습니다

최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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