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름의 연착

|길을 물으려다 해방이 있는 쪽을 물었다|

by 이닻


겨울이 길어진다네
우리 멋들어진 여름을 약속했는데
밭에서 갓 딴 토마토가 얼마나 뜨거운지
벌겋게 설명해 주기로 했는데

천장 구석에서 물이 떨어지는 좁은 방
너는 구멍 뚫린 우산을 입고
벼락처럼 허리를 꺾은 채 잠들어 있다
침대가 축축하구나
너와 같은 면적의 슬픔을 베고 자는
로망을 가져본 적 있었지
등 뒤 가까이 붙어서
너의 고요를 간지럽히지 않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보려고

아직 더 기다려볼 수 있어, 괜찮아
비가 새는 이마를 훔치며 이삿짐을 싸던 네가
그 웃는 낯에서 해방되는 꿈을 꾸길 바라
물러터진 과실처럼 삐질삐질 미소 짓다
계절의 겹눈 속에 울상으로 익어주었으면

여름이 멀었다잖니
울지 않고 마냥 파릇하기엔
아무것도 탓하지 않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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