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종료 종이 울렸다.
감독관과 부감독관이 답안지와 시험지를 걷어가기 시작했다. 수험생들이 가방을 챙겨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연이도 일어나 나가려 하는데, 다리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서 나가려 했는데, 머리가 어찔했다. 연이를 제외한 모든 수험생이 나갔는데, 연이는 나가질 못했다.
무언가 빠져 나간 느낌.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겠구나 하는 아쉬움과는 조금 ‘결’과 성격이 다른 느낌.
시원한 느낌은 맞으나 섭섭은 아닌데, 이상한 이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하고 오묘했다.
그렇게 10분 즈음 지났을까? 감독관이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열려 있는 교실이라 확인 차원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연이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감독관이 연이에게 물었다.
"왜 안 가세요?"
"다리가 풀려서 일어서지 못하겠어요. 조금만 있다가 나가도 될까요?"
연이의 통사정에 감독관은 빙그레 웃었다.
"다른 자리에 다시 보길 기대할게요."
연이는 감독관이 나가고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새겼다. 그 말에 다리에 힘이 돌아왔는지 교실을 나가면서 휘둘러보며 연이는 이보다 더 쏟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지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수많은 적들을 온몸으로 막아내 내상이 심한 느낌이 들었다. ‘사력을 다하다’의 말의 의미를 몸소 느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떨지 않고 영어부터 풀었고, 무사히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런 연이를 감독관도 봤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느 수험생에게 얘기하듯 감독관이 흘린 말에 연이가 감동을 받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날 저녁, 문제와 정답이 공개가 되었고 연이는 합격과 가장 근접한 점수를 받았다. 필기시험 발표일에 한 번, 최종 합격일에 한 번. 아무리 힘들어도 울지 않던 연이의 눈에는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온 날의 기억이 다시 났다. 시험지와 한 몸이 되어 미친 듯이 문제를 풀던 그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야 합격을 하는구나. 끝까지 하면 붙는구나. 끝까지 하면 붙는 그 누군가가 이제 되었구나. 꿈으로 남을 뻔했는데, 현실로 만들기가 이리 힘들었구나.’
최종합격 제출서류 중 대학 졸업증명서를 가까운 주민센터가 아닌 도서관 근처 주민센터로 잘못 지정하는 바람에 겸사겸사 도서관에 들렀다. 두 달 동안 눈싸움을 하게 한 도서관 열람실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어쩌면 그때 결막염에 걸리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났다. 합격의 산 정상에 선 연이는 무채색이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도서관 앞에 있는 푸른 잎을 넓게 벌린 플라타너스 나무가 바람이 일 때마다 흔들리면서 내는 나뭇잎의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 앞의 공원의 푸르름이 보였다. 나무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고, 등산하는 사람들이 바닥에 찍는 등산스틱의 탁탁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씽씽 킥보드를 타며 웃는 소리가 들렸고, 조심하라며 소리치는 엄마들의 즐거운 푸념이 들렸다. 그리고 햇볕 가득한 날 공원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담소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니 보여도 보지 못하고 들려도 듣지 못한 그런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연이의 앞에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합격의 산 정상에서 연이는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