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곁에 있던 잡지, 내가 마주한 주부생활 전시

기록된 여성들의 삶, 그리고 지금의 나

by hjs dearscribe

주부생활’이라는 잡지를 처음 본 건 어린 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땀을 훔치며 돈까스를 굽던 엄마의 뒷모습.

그 옆, 주방 책장 한 켠엔 늘 두툼한 잡지 '주부생활' 이 꽂혀 있었다.

이름부터 단단했던, ‘주부생활’

나는 그 옆에서 레시피를 소리 내 읽어주기도 하고, 광고 카피를 따라 부르며 엄마를 웃게 하곤 했다.

그 잡지는 늘, 엄마의 하루 곁에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잡지 한 권이 수많은 여성의 감정과 일상을 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삶의 무게와 애틋함, 소소한 기쁨까지 지면 위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 북촌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거리 한복판, 큼지막한 현수막 속 글자에 시선이 멈췄다.

‘주부생활 창간 60주년 전시’

익숙한 이름에 이끌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고, 생각보다 깊은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주부생활’은 1965년 창간된 국내 최초이자 최장수 여성 종합지였다.
“깨어 있는 여성, 영원한 모성을 간직한 어머니”라는 창간 정신 아래,
여성을 가정의 일부가 아닌 사회 속의 주체로 조명한 시대의 선구자였다.

지금처럼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던 그때 그 시절,여성들은 이 잡지를 통해 서로의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고 작은 위로와 연결을 주고받았다.

짧은 기사 한 줄에서도 그 시절의 가치관이 보였고, 동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그날, 잡지를 다시 보며 ‘기록’이라는 것이 단지 정보를 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요즘 나는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커리어를 어디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명쾌하지 않은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들.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전시를 보고 난 후 내가 얻은 건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주부’라는 이름 안에 담긴 것이 결국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

형태는 변해도 본질은 그대로라는 것.

기술이 발전하고,가족의 형태가 변하고, 세상이 끊임없이 바뀌어도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하고 지켜내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그랬듯,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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